[1]
내향형 인간의 단점이자 지방 재택근무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혼자의 삶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G를 비롯한, T, S, C 모두 "이게 뭐가 문젠데?"라고 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후천적 내향형 인간이라 주장하(고싶)는 나는 이런 상황이 답답하다. 나는 스스로 극한의 E였던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이 마저 C,G,S,T 모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겠지. 아무렴 어떤가! 그들만큼 나도 나를 잘 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이 두렵기도 했다. 20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연애하며 보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나 모임을 만드는 것이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필요한 인연에 대해선 스스로 빗장을 치고 거부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이게 올바르게 살고 있는건가?" 라는 생각도 들고, 이리 살다간 사회성에 문제가 생길 듯한 불안함이 커지던 찰나, 좋은 기회에 닿아 각종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ISFJ or ISTJ인 나로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도다. 뭐 거창한 모임을 하는건 아니고.
어이없지만, 최근 MBTI 검사에선 ENTP이 나왔다. 완전 반대다. 원래 이 모습인지, 이 모습이 되고싶은건지 알 수 없다.
고무적인건, 몇개월 전까지 극한의 내향형이었던 내가 외향 66%가 되어버린 것이다.
[2]
첫 시도는 "커피챗" 모임이었다. 최근 지인의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아침 커피 모임"이 있다. 매주 랜덤하게(라고는 하지만 대게 정해진 요일이 있는 것 같다) 아침시간과 모임 장소가 정해지고, 인스타그램 DM으로 선착순 참석자를 받는다. 단, 정원이 차게 되면 그 즉시 매몰차게 다음 기회에! 를 외쳐버리는 모임이다. 2번 정도 참여하기 위해 시도했는데, 첫번째 시도는 23시 50분에 신청해서, 두번째는 정원초과라서 소위 말하는 2연속 입뺀을 당했다. 빡빡한 조건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늦은 것을. 무슨 용기에선지 모르겠지만, 주말밤 최근의 우울감에 완전히 눅눅하게 되어버린 상태로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직장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술 모임이나 스터디 모임같은 에너제틱한 모임이 아닌, 퇴근 후 간단한 커피 모임을 제안했다. 살짝 일을 만든 것 같아서 글 올리고 후회도 좀 했지만 의외로 수요는 꽤 있었고 신청자가 많아서 결국은 선착순 마감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가슴아픈(?) 입뺀*2 의 추억이다. 
알 지 못할 용기로 커뮤니티에 써버린 커피챗 공지! 덕분에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3]
모임의 룰은 간단하다. 주중 1회 퇴근 후 다같이 만나서 커피 한잔 하며 한시간 내지 두시간 정도 커피 마시며 가벼운 이야기를 하고 깔끔하게 각자 집으로 간다. 나같은 내향형(?) 인간에게는 이런 부담 없는 모임이 딱이다. 참여 하게 된 멤버분들은 다행히도(?) 좋은 분들이셨다. 형누나동생여러분 이 글을 못보시겠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자 다양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나로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세번째 모임 정도 되었을 땐, 모두 약간의 친분이 생기기도 했고, 퇴근 후 밥먹을 시간 없이 커피를 마셨다보니 식사 때를 놓치기 일쑤였다. 그 주엔 치맥하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거인통닭 처음가봤다.. 여기 또가고싶다.. 배고프다.. 존맛…
치맥좋다좋아
그 주에 처음 참여하는 분이 계셨는데, 카톡이나 메신저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적당히 시간과 장소만 전달하고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대화하는 수순이라 그에 대한 정보는 두세번 정도의 대화 핑퐁, 그리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다였다. 멀쩡하다 못해 준수한 외모에 프로필 사진을 보아하니 운동도 잘하시고 꽤나 활동적인 취미를 가진 분인 것 같았다. 실제로 뵀을 때 역시 외적으로 부러울 정도로 참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 시간에 조금 늦었던 탓이었을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도 쉽게 꼬이고 멤버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부자연스러운 반응의 연속이었고, 자리가 끝나는 시간까지 그 모습을 유지했다. 술자리라 웃고 떠들고 재밋는 분이구나 하고 넘겼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진 하드웨어가 좋은데 왜저럴까.. 그냥 편하게 행동하면 매력적인 사람을 보일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 순간부터 "거울치료" 라는 단어가 그 날의 남은 나의 시간, 그리고 지금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꽤 오랜기간 나를 고쳐놓기 위해서 안타까워 하며 수도 없이 했던 말이었다. 상처주는 말이라고만 생각했고, 머리로는 고쳐야 한다, 고치고 싶다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이란게 지적을 받으면 자연스레 소극적으로 변하는게 정상이지 않은가? 난 오히려 소극적으로 변하기만 했었고, 결국 그당시엔 고치지 못했다. 아, 이렇게 한순간에 깨달아버린게 아쉽고 미안했다. "이래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던거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허무했다.
[4]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기계학습 분야이다 보니, 우연찮게 생업의 논리 관점에서 내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기계 학습은 새로운 데이터가 입력되었을 때, 이에 대해 최적의 결과를 예측하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도 기계도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과 그에 따른 정답이 필요하다. 기계학습 분야에서는 이를 학습 데이터 라고 부른다. 사람으로 치면 교과서나 교재같은 거다. 이 학습 데이터라는게 기계학습에선 꽤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고 하지 않는가? 뭣 같은걸 배우면 사람도 기계도 뭣같은 결과를 뱉어버린다. 결국, 충분한 양의 잘 짜여진 학습 데이터는 좋은 모델을 만들어내고, 이는 좋은 품질 결과로 이어진다.
좋은 학습 데이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학습데이터는 많을수록 좋다. 현실 상황을 반영한 적당한 bias도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데이터가 너무 편향되진 않았는지 비대칭 정도를 확인하기도 하고(Data skewness), 균등 분포(uniform distribution) 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정규분포를(normal distribution)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균등 분포와 정규 분포. 수학 싫으니까 넘어가자.
지금의 나를 돌아봤다. 학습 데이터는 충분한가? 데이터 분포는 아름다운가? Overfitting(학습 데이터를 과하게 학습하는 것. 오버피팅 되면 학습 데이터와 다른 입력에 대해서 오답을 출력할 확률이 높다) 되어있진 않나? bias는 적당한가? 일하는 모습을 제외한 나는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가지고 있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기적인 기질을 타고난 나는 공감하고 이해하는 학습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했다.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했어야 하는 20대와 30대를 너무 이기적으로 보낸 탓이리라. 데이터가 충분치 않으니 distribution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Overfitting 역시 의미없다. 그러니 학습이 잘 되었을 리가 없지. 처참한 결과는 따논 당상이다. 모두 실패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인간공감능력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능력에선, 긴 삶을 약속하기 위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예측 훈련은 실패다. 인생은 2회차가 없으니 훈련 실패가 아니라 그냥 실험 실패다. 서른 중반에 들어서야 나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모델을 재학습하려니 비용(cost)이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녜…맞습니다.
[5]
쉽지 않은 학습 과정이지만, 스스로를 이해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는 online ABTest였고, 언젠가 좋은 결과가 나오면 서비스 릴리즈 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아무렴 어떤가? 앞으로 학습 데이터를 많이 쌓고싶다. 업무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공감도 하고 토론도 하고 싶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online abt 결과도, 서비스 릴리즈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내가 당신들의 기나긴 offline/online abt의 학습 데이터 오류나 실패한 결과가 아니라, 학습의 목적(Object) 이고 최종 릴리즈 모델이길 조심스럽게 바래본다.
-2023.03.12 일요일 저녁에 마무리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