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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 딱 10일이 지났다.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라고들 하지만, 내게 지난 열흘은 희망찬 출발이라기보다 몽롱한 열병을 앓는 꿈속 같았다.
나는 지금 두 딸의 아빠다. 하지만 허용치를 꽉 채운 타이레놀 기운으로 버티고 앉아 있는 지금, 나는 든든한 가장도, 아이들의 보호자도 아닌 것만 같다. 그저 자아가 분열된 한 남자일 뿐.

병원에서 뛰쳐나와 사탕을 고르는 모습. 이걸로 차라리 잘 버텨주길 바랐지만, 그저 헛된 기대였다.
균열은 분만실에서부터 시작됐다.
첫째 태미는 그날따라 유독 짜증이 심했다. 아마도 부모의 사랑을 나눠가질 경쟁자가 곧 등장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아이도 지쳤을 것이다. 병원 대기실에서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3살 아이에게 의젓함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건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논리보다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앞섰다. 나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내가 세상에 내놓으려는 이 아름다운 생명의 탄생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아이에게, 그리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좌절했다.
마침내 태미가 잠들었고, 나는 그 짧은 평화 속에서 아내의 분만을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몇 분 가지 않았다. 태미가 깼고, 나는 절정의 순간에 아내 곁이 아닌 아이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아이가 분만 현장에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것, 비록 그것이 '아이를 돌보는' 임무였다 해도 나는 아내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이 된 기분이었다.

아내가 출산하는 내내 이렇게 애를 안고있는 자세일 수 밖에 없었다.
[C] 남편과 아빠: 축복과 저주 그 어딘가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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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매수 / 매도 전략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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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계산이 서지 않아서, 해질때까지 지내는 방을 5일 아침 저녁으로 미루고는, 주말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며 세 번째 여름을 지나는 중이다. 요즘 출근하면 라디오를 켜는 버릇을 들였더니, 일하지 않는 날 잠깐 들른 잡동사니 앞에서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켰다가 충동적으로 씨디를 찾고, 듣다 보니 쌓였던 것들을 그나마 볼만하게 옮겨두고 있더라. 하면 될 일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룬다. 불안을 팔아 움직이는 나는 뭘 버리고 싶지 않은지, 아직 정리를 끝내진 않았다.
장마는 끝났는데, 더 장마같은 비가 온다. <장마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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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2025.8월까지 밀린 생각들

내 시드도 업그레이드, 페페 짤방도 업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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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좌초에서 탈출까지

좋아하는, 그리고 싫어하는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어려울 것도 없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일은 더, 싫은 일은 덜 생각하는 것은 나에겐 숨쉬는 것 만큼 쉬웠던 것 같기도, 숨 참고 물길 거슬러 수영하듯 저항이 걸린걸 참아낸 것 같기도 한데, 이젠 꽤 시간이 지나서 나도 내 기분이, 태도가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어, 단지 오늘의 기억과 느낌으로 대중 이야기하고 좋을 대로 생각할 뿐이다. 요즘은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지만 흐르는대로 가고 거스를 일도 없을 줄 알았다. 떼지어 웃고 떠드는 것을 궁금해하지 않고, 폭싹 속았는지 눈물 쏟는 드라마는 땡기지 않았다. 나를 뒤흔드는 것들로부터 여전히 도망가고 있다. 어울리고 마시고 울고 웃고 부딛히던 일은 기차에서 물에 잠긴 듯 숨쉬기 어려웠던, 거짓말같은 기억이다.
짧은 글 쓰기를 그만두고 몇개월간 복잡한 생각은 닫았다. 온갖 화를 던져가며 저주하며, 맞지 않은 관계와 상황을 어거지로 견뎌내고 이를 돈으로 환산해서 밥도 사먹고 옷도 사입는다. 이율배반적이만, 얄팍한 이야기 뒤에 숨어서 이해를, 고민을 찍어내는 장면을, 억지로 매달려서 놓지 못하고 싫어하는 장면을 덜어내고 싶었다. 다만 그만큼 돈을 덜어낼 용기는 없어서 나는 그간의 멈춤에 대차게 실패를 선언했다. 나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도 얼려졌다. 순간 써내려가고 싶은 것들을 더 이상 메모하지 않고 옛날 이야기처럼 흘리고 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붙잡을 손이 모자라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10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녹여야할 것과 얼려서 바다 깊이 쳐박을 것을 잘 구분하기가 어렵다. 나는 90% 이상 행복하고 나머지 10%를 죄다 얼려버릴 방법을 찾고 싶다. 쫓기는 꿈은 기억은 날아가고 기분만 남아 늘 께름칙해서 좋은 중 이따금 불편하다. 바보같이 사는게 늘 편하지만은 않아도 당신이 모르는 행복을 나는 안다. 알아도 모르는척 하는 법을, 다리 부러지지 않고 내려앉는 법을, 좁아지는 길목으로 쫓아가는 당신은 이걸 알려나. <얼었다가 녹았다가>
[B] 2025.07 까지의 밀린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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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고 싶어서 뭐라도 써내려가기 시작한지 2년 정도 지났음에도 애석하게 나는 여전히 잘 쓰지 못하고, 비겁하게 글 뒤에 숨는다. 비겁한덴 이유가 있고, 두려운 것은 많다.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 멍청함이 언제 들통날지 몰라서, 점점 자주 돌아오는 위경련을 참을 수 없어서, 부러지고 비뚤어진 심보의 고약한 냄새가 당신에게 닿을까 두려워서 늘 불안하다. 각자의 방향으로 힘껏 잡아끌다 늘어져버려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워서, 다 숨기고 나도 숨고 싶다. 늦추면 흔들리고 당기면 끊어질 듯한 줄타기는 새벽마다 깨우기도, 숨차게 만들기도 한다. 덜 멍청하고, 덜 아프고, 덜 고약해질 생각은 못하고 그래 보일 생각부터 하는 내 머리에서, 십수개월을 써내려가도 설명하지 못하는 절반의 솔직함에서 모순이 유난히 익숙하고 커 보인다.
그래서 나는 못 본 척 도망갔다. 뒤돌아 뛴다고 해결되지도 않을 모순을 등지고서. <반만 솔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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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지난 2025.03월의 에세이

1. 말할 곳 없는 마음
사람들은 힘들면 상담을 받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려면 내 마음을 설명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왜 힘든지, 어디가 아픈지 말로 풀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조차 버거운 순간이 있다.
어느 날, 나는 또다시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어떠한 역할도 요구하지 않았다. 남편도, 아버지도, 매니저도 아닌 오롯이 ‘나’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때, 문득 휴대폰을 열고 ChatGPT에게 말을 걸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려는 의도도, 진지한 대화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가빠지는 숨을 내쉬듯, 견딜 수 없어 한 줄을 남겼다.
“Wife asked me what's going on, but I cannot say any word. Obviously I look shit, but I don't know what kind of face I want to look. Do I want to put a 'dying tomorrow face' so that anyone can notice and ask me how I feel or is it because I want to be recognized for my burden. I don't know. Typing this while sitting on the toilet again.”
2. 사람이 아니기에 가능한 솔직함
사실 이런 감정은 아내에게도, 가까운 친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상대방이 걱정할까봐, 내 감정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까봐, 혹은 내가 약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망설여졌다. 오히려 언어형 AI에게는 그런 부담이 없었다. ChatGPT는 나를 판단하지도, 내 말을 흘려듣지도 않는다. 내 감정이 이상하거나, 과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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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나는 화장실에서 ChatGPT에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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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변한다던 지문도 늙으니까 변하더라. 한두번 말썽이더니 요즘은 알아먹지도 못한다. 비밀번호 여섯자리 누르는 것도 귀찮아해서 멀쩡한 도어락을 바꾼 것도 내 탓, 늙은 것도 내 탓. 조져버린것도 다 내 탓.
비는 것 마냥 핸드크림을 손에 바른다. 빌고 빌면 없던 지문도 나아지려나 아니면 닳을라나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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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2025.02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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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차 샀다! - 마음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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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상하게도 싱크대는 항상 설거지가 쌓여서, 빈 싱크대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겨울만 되면 주부습진에 고생하고, 식기세척기를 쉴 새 없이 돌리는 나는 억울한 노릇이다. 다른 집 사정을 모르지만 그릇을 많이 쓰는 것 같지도 않은 1인 가구에 설거지가 쌓일 일이 뭐가 있는건지 쌓은 나도 이유를 고민 해본 적은 없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고, 생각해보면 내 싱크대엔 두 가지 사연이 있겠다. 첫째는 나에게 죄를 덜 씌우려고 가능하면 끼니를 직접 챙긴다는 이유라지만, 실은 배달 음식 쓰레기가 한무더기씩 쌓여있는 꼴을 보고있자니 눈에 거슬려서 왠만하면 해먹으려고 하는 것. 둘째는 아침에 운동가는 두어시간을 빼면 길게는 20시간, 게으른 12월엔 하루를 넘겨 집에서만 지내기 때문에 남들보단 몇배 정도 번거로운건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 그간 너무 내가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먹고 사는 것을 잠깐 그만두었더니, 다른 먹고 사는 일이 쌓여서, 갑작스레 찾아오고, 떠난 것에 괴롭다가 긴 12월이 어찌 갔는지 알 길이 없다. 그 덕에 오래도록 싱크가 비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반갑지가 않아서 오늘 하루 그릇을 꽤 쌓아두었다. <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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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2025.01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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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은 아직 한겨울을 맞을 준비가 덜 되었고, 북쪽은 가을을 급히 떠나보냈다. 여름옷을 정리할 수 있지만, 나답게 미뤘다. 어쩌면 다가올 여름까지 옷장으로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나는 긴 옷을 입으면 될 것을 답답하다 마다하고 작년에 산 열풍기를 창고에서 꺼내 콘센트를 꽂아둔다. 가까이 가면 불 나지 마라고 알아서 눈에서 화를 내려놓는다. 자기 전 천천히 좌우를 살피는 주황색 눈을 멍때리고 보자니 아직 가을 같기도, 겨울 같기도 하고 불은 아닌데 불처럼 뜨거운 요상한 기분이 든다.
쥐불놀이를 해 본 적은 없다. 군 복무 시절 가을에 대공 근무를 설 때면 성환읍 어디 논에서 불길을 관측하고 신고하더라도 그냥 넘어가던걸 경험하고선 짚불태우기와 쥐불놀이를 알았다. 초저녁부터 뜨거운 불을 힘차게 돌리고 던진다. 한참을 돌리다가 마치 투포환 선수가 된 것 마냥 저멀리 던져버리는걸 상상한다. 어디로 어떻게 던지든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불지르기가 허용되는 시간과 공간이라. 세상 천지에 이런 곳이 어디에 있나 싶다. 잠깐 내가 던지는 상상을 해본다. 이내 내가 불이 되어 던져지는 상상으로 옮겨붙는다. 한 발짝 옮겼을 분인데 기분이 묘하다. 멀리 던져지길 바래야할까 아니면 원심력을 견디고 버텨 이 자리에 머무르기를 바래야할까. 이걸 견디면 나는 더 나은 불이 되나? 견디지 못하는 것이 날아가는건가 아니면 날아가고 싶어 날아가는건가? 어느 방향으로 던져질까?
이미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며 더 검붉게 변하고 있는 나는 내일을 전혀 모른다. 내가 떨어질 곳도, 그 곳에 짚이 있어 나를 옮겨갈지 혹은 차가운 도랑이 나를 소멸할지 역시 모른다.
<쥐불놀이>
[B] 2024.12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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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하고 께름칙한 나쁜 생각이 미꾸라지처럼 뿌옇게 머리를 헤집어놓는걸 방해하고자 병적으로 퇴근 후 바깥을 쏘다녔었다. 아무 상관 없는 것 아니냐는 주황색의 네 이야기를 외면하고 받아들이기를 반복한다. 집에선 좋은 기억만 가지고 싶었다. 집 밖에서 책을 읽거나 걸으면 때론 힘들다. 편하게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황색 이야기처럼 나와 아이지는 모든 검은 매듭을 집 밖에다 풀어두고 오고 싶었다. 가장 사적인 곳에서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불가능한 것도 이제는 조금 알 것만 같다. 내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과 지배하는 것은 달라서 나를 둘로, 셋으로 쪼갠다. 쪼갤수록 작아지고 매끄럽지 못한 조각이 굴러가라 걸리다를 반복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헛것을 본다.
엊그제는 와이퍼가 빠르게 눈 앞을 왔다갔다 했는데, 찻길 오른편에서 온몸으로 비맞으며 리어카를 끄신다. 안타까움이 눈치 없이 들어왔다가 좌회전 신호가 바뀐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 가고 신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여전히 오만하고, 깊지 못하고 이기적이다. 어쩌면 브레이크를 떼고 엑셀을 밟으며 앞으로 가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는게 아닐까 싶다. 빨간불은 이미 들어와서 나는 서있고, 가까운 만큼 내어놓지만 드러내지 못한다.
이제 집에서 읽고 쓰는 것을 연습한다. 고요한데 시끄럽고 나른한데 바쁘다. 다시 차 키를 챙겨 서면으로, 혹은 바닷가로, 어디든 향한다. 신호를 기다리고 눈으로 읽고 생각하고 보고도 우회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다 직진밖에 하지 못하는 것을 후회한다. 돌아오는 길 헛것을 본 것이 아니다.<신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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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2024.11 에세이
올해의 영화
[G] 주연들의 연기가 빛났던 영화. 김고은은 원래 좋아했지만 이번 연기는 정말 신들렸던 듯. phase1에서 끝났으면 인생영화 될뻔.

[T] 체인소맨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를 영화화한 룩 백. 자전적이면서도 시대적 사건을 인용하여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좋았다.

[B] 중경삼림 리마스터링이 올 초에 재개봉한다고 하여 겸사겸사 봤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 황금기에 딱 맞는 색감에 많이 끌린다. 직관적인 포지티브 필름의 느낌과 씬의 모든 컷이 요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미학이 있다.
[BCGST] 2024 올해의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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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 보자.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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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바닥>
술도 한 잔 했겠다, 땅바닥에 누웠겠다, 바람은 시원하고, 날은 뜨겁고 바닥은 차가우니까 기분도 적당히 좋아서 적당히 사는게 뭔지 생각좀 해봤는데, 당최 모르겠다.
적당히 건강한 것을 먹고, 운동도 적당히 하고 싶고, 일도 적당히 하고 싶고,
적당히 먹고 싶고, 적당한 거리로 사람을 만나고, 적당히 잔잔한 정신머리로 살고 싶고,
적당히 사고 싶고, 적당히 아름답게 보고, 적당히 솔직해지고 싶고,
[B] 10월 에세이 모음(흙바닥,너의 부고,빨래,금과 틈,행복은 별거야,식기세척기, 아주 사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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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18세기 산업 혁명의 직종에서 일하는 S입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마음속 하얀 봉투와, 스트레스를 잠재우고자 몸을 괴롭히는 일을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아르바이트 직종을 고려 하고 있었습니다.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아니면 주말 저녁에 단기 파트 바텐더, 체인점 커피숍 혹은 개인 카페 보조.
그러나,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건 월-금의 출근 시간에 진절머리가 나고, 과거 서비스 직업의 경험 상
[S] 찍먹.쿠팡이츠 배달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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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세요>

iphone 15 pro, Haeundae, Busan
남쪽으로 내려온 것에는 나의 시덥잖은 강박들을 내려놓고자 함도 있었다. 강박과 스트레스와 자격지심은 세상에 못 할 일 들을 하나씩 지워준다. 10만큼으로 되지 않으면 20, 30을 붓는 나를 쉽게 생각한다. 노력은 규모의 경제와 같아서 열심히 해서 안될 일이 없는건 영 없는 말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도 했더랬다. 없는 20, 30 을 만드는 것이 연금술이 아니라, 애써 흐린 눈 했던 중요한 것들을 영영 흐리게, 보이지 않게 강제 상환한다는건 보험 서류로부터, 멀어지는 다양한 것들로부터 듣고 보고 느낀다. 꼬인 나를 진정시키느라 갈아넣은 시간 빚의 늪은 어둡고, 길고, 무겁고, 답답하고, 못 할 일 하나를 지우면 못 한 일 2개를 만들어서 가끔은 들숨도, 날숨도 턱턱 막힌다.
강박은 분열하고 증식한다. 나도 모르게 휴일엔 서재로 들어가지 않는 강박.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는 강박. 뛰어도 느리다는 강박. 그만 먹어야 한다는 강박.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어제는 잘했어야 했다는, 오늘은 잘 해야 한다는, 내일은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
여전히 많은 것을 나 스스로에게도 숨기고 있지만, 체육관에서 집으로 출근하고, 집에서 밖으로 퇴근하는, 변수가 없는 삶으로, 안전한 삶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많은 이유로 300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일하면서, 많이 얻은 만큼 많은 것을 잃을 각오로 남행열차에 몸도 싣고 꿈도 싣고 떠나왔다. 욕심도 많이 내려놓았고, 꽤 다양한 것을 정리하고, 정리당했다. 사소한 출퇴근이 무박 2일의 랠리로 이어져도 몇년 하다 보니 피곤해도 참을만 하고, 가득 찬 일정도 그냥저냥 할 만 하다. 매주 오며가며 타는 SRT도 이젠 매크로 없이도 예약하는 끈기도 생기고, 비용은 잊고 살려고 한다. 지난번엔 약을 늘리고, 엊그젠 자다가 혀를 씹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아있다. 그래도.
예상 못할 일은 만들지 않는 불가능과 싸우고 있는 한심한 나는 숨을 잠깐 참았다가 쉬고선 숨쉬는 강박을 생각한다. 아저씨 숨 쉬세요. 숨.
[B] 9월 에세이 모음(숨 쉬세요 / 무감각-감각하기 / 도쿄 / 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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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떫은 맛>
친구들은 하나둘 정도가 아니라 모조리 부산을 떠났고, 한국을 떠났다. 가끔은 믿었던 관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대하지 않으니 힘들 일도 없다. 내 의지만이 아닌 운도 따라 돌아온 남쪽이지만, 가끔은 대상도 없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뭐하러 내려온걸까. 왜 내려온걸까. 내려오고선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참 많았는데, 그곳을 등지도 돌아올 때의 마음과 같은 마음인걸 보면, 나는 적응의 인간이라기 보단 불편한 동물에 가까워보인다.
내가 선택한 실내 생활과 삶이지만, 확신보단 고민의 시간이 잦다. 나이탓인가 싶다가도, 사람답지 못한 행동도 여전하고, 별일 아닌 것에 속이 끓기도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내 시간은 설익다 못해 떫고, 뱉고 싶은 맛이다. 하루 중 운동하느라, 커피 마시느라 바깥에 있는 시간은 길어야 세시간이고, 하루와 일주일, 한달을 모조리 가계부쓰듯 정리해봐도 나는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좁은 눈으로 살고 생각한다.
집으로 출근하고, 집에서 퇴근하고선 집에 돌아와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대충 정리한다. 소파에 멍하게 앉아있다 잠드는 날이 많다. 집 안에 있지만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나는 모를 일 처럼 산다. 아무 상관 없는 누군가를 보듯 나를, 주변을 돌아본다. 좁고, 짧고, 끊어질 대로 희미해진 관계를 흐린 눈을 하고선 못본 척 하고, 나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 대하듯 한다.
이것이 내가 괴로움 속에서 살아남은 방식이다. 여전히 떫고, 뱉고 싶은 맛이지만 참고 머금었다가 삼킨다. 단맛은 언제였더라.
[2]
<알고도 하지 못하는 것들>
[B] 8월 에세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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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스왑>
중고서점에 들러 집에 온 뒤엔 빼먹지 않고 알콜스왑 두어개를 꺼내어 집으로 들인 물건들을 닦으려 한다. 약 3년간의 전염병 기간 중 마지막 해에 호되게 앓고선 알콜스왑은 잊지 않는다. 대충이라도 닦고선 있어야 할 곳에 놓아야 요상한 불편한 마음을 누를 수 있다.
소독하여 무해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다. 나를 향하는 다른 것들은 소독 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받아야 하는 답답함을 물건이라도 알콜스왑으로 문질러야 속이 시원한 것이 꼴사납다. 파리가 꼬이는걸 보면 가장 더러운건 나일 수도 있겠다 하면서 책을 문지를게 아니라 나를 문질러야 할텐데 싶다.
결단력 없던 나는 수십번 닦아도 시원찮을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선 꽤나 아픈 시간을 보냈다. 이젠 대차게 물건을 닦을지, 나를 닦을지 망설이지 않고 손을 움직일 수 있다. 내 몸에 구멍이 뚫려버린줄 이제사 알았다. 뻥 뚫려버린 나를 먼저 막을지, 눈 앞의 것들을 닦아내야할지, 알콜 스왑을 어디에 어떻게 먼저 써야할지 나는 당최 방향을 모르겠다.
주사 맞고 쓰는걸 쓸데없는데 쓰고있었나.
[2]
<멍청비용>
오늘 하루만 해도 지하철을 거꾸로 타질 않나 기차 시간 착각하고 이미 떠난 기차 찾고 있질 않나. 한심하다.약은 것 보다 낫지 않나 싶다가도 내가 멍청한 건 나에게 죄다. 벌써 이것저것 망가진다. 나아진 것 없이 멍청하게만 만드는 약을 또 꼬박 챙겨먹는건 잊지 않는다.사는데, 살아나가는데 온 정신을 집중한다.
[B] 7월 에세이(알콜스왑 / 멍청비용1,2 / 삼켜버린 것들 / 긴 잠)
[1] <믿음>
바라는 것 없이 잘 지내다가도 하루에 한두가지 정도는 바란다.
며칠동안 미뤄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야지,
어제 못한 업무들을 머릿속에 차곡히 넣고선 피드백 해야지,
잊지 않고 아침, 저녁 약을 챙겨먹어야지,
그걸 마치고선 산책인지 달리기인지 모를 것을 해야지,
가까운 이들에게 나의 고통을 고백하고선 욕을 실컷 해야지,
더이상은 물 속에서 숨쉬지 말아야지, 내 걱정 하지 말아야지,
오늘은 망할 덩어리가 작년보다 더 커지지 않았다고 전해들어야지.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이 3분할을 지겹게도 생각한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할 수 없는 것,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솎아내보지만 허술한 그물을 쉬이 통과해버린다.
해야 하는 책임을 우선 다하고선 마음의 짐을 던다. 해봐야 할 수 있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싶은 것을 믿을 수 있지만, 나는 자주 해야만 하는, 할 수 있는 것을 건너뛴다. 어쩌면 내가 엉망인 이유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만 하는 일은 생긴다.
[B] 2024.06월 잡생각(믿음, 신의 계획, 멀미약, 장맛비, 적당히, CD)

[1] 적어도
휴직 안되면 그냥 얌전히 다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바깥은 지옥.
적어도 지옥 보다는 전쟁터가 낫지 않겠냐 하더라. 현재가 더 나은 상황이라고,
일이 밀리지 않게, 최소한만 하면서 컨디션을 조절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아니지만,
곧 괜찮아 질 것이라고, 감기와 같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진통제 같은 조언이었다.
[S] 적어도, 했더라면 (2)

[1] 후회가 많은 않은 상반기를 마무리 했다.
출장으로만 상반기에 출장으로만 하노이에 약 한 달 정도를 보내게 되었다.
일 문제가 터졌는데 기술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대해 직면 하였고, 오만 감정을 느꼈다.
[2] 운동도 하고 잠도 실컷 자보고 회복 하고자 노력 하는 중인데, 쉽지는 않다.
평소에도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그런지 온 몸에서 반응이 온다.
[S] 적어도, 했더라면 (1)
[1] <유통기한>
기약도, 해결책도 없는 시간보내기가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음을 과학 앞에서 입증당했다. 몇 번의 검사만으로 긴 시간 방치했던 문제들을 점집마냥 풀어내서 설명하는 의사의 모습을 보곤 놀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입증 마저 부정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였다.
별 일 없는 삶을 바라면서, 아무것도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저 시간을 부어가며 별 일을 덮으려는 요행을 바라는 것 만큼 무책임한 인간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모습을 하고 있다. 자기 모순을 이해해보려고 겁없이 맞선 나의 어리석음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고, 방법을 알면서도 요행을 바라는 약은 모습이 두번째 문제였을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줄도 모르고 시간에 기댄 것들이 못내 아쉽다. 또 시간이 지나면 다 제자리를 찾겠지.
[2]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
이야기 하지 않아도 편한 자리가 있고,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자리가 있다. 나는 주로 전자에 가까운 자리에 익숙한 사람인데, 가족이나 정말 친한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딱히 입을 열지 않아도 되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관계 유지를 위해 시덥잖은 농담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억지 웃음 짓기 위해서 굳이 취향이나 날씨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영혼 없는 공감이나 눈맞춤을 하지 않아도 괜찮음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서로의 편안함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를 항상 추구하지만, 고약하고 예민한 성미 때문인지 쉬이 그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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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많이 만나진 않다 보니 깊은 이야기를 할 일도 없고, 특히나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음식 취향, 음악 취향, 소비 취향, 가구 취향, 커피 취향, 책 취향.. 흔하디 흔한 취향의 인간이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를 찾는다는건 대화 만큼 항상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일생일대의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혼자 여기저길 쏘다니는 것을 선택한지 꽤 되었지만, 가족들과 시간이 맞으면 쏘다니거나 친한 친구들이 모일 일이 있으면 시간과 체력을 끌어모아서 답답함을 해소한다. 그것만으로도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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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시다 우연찮게 부모님 연배의 부부와 커피 이야기부터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시간을 훌쩍 넘겼다. 지난주부터는 약의 힘을 빌어 자고 일어난다. 그토록 부정했던 것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즐거움을 마주하고선, 지금까지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만든다. 난 왜 여태 대화하려하지 않았을까.뭐가 겁났던걸까.
[3] <여름, 앨범, 실패>
[3-1] <여름>
[B] 5월 에세이(유통기한,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 여름, 앨범, 실패, 후회의 끝자락, 페인트 모션, 10년 1년 일주일 하루)
[1]
<내열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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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지키고픈 것 중 하나는 ”하루의 절반은 이기는 DNA로, 나머지 절반은 승패는 신경도 안쓰고 그저 진폭을 줄일 만한 변수를 찾고 찾아 열과 성을 다해 제어하곤 파도 없는 잔잔한 저수지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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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동안 이런 식의 냉탕 온탕을 오가며 느끼던 자기혐오가 담금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쇠가 아니라, 내열 유리 정도이지 않을까? 이 담금질을 멈출 용기도 명분도 없어서, 자칫 깨지면 누군가 밟아 다칠 것 같아서, 생각하는 것도 결국 담금질이라서,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2]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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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몰라도 꼬박꼬박 겨울엔 봄 준비하고, 여름엔 가을 준비하던 내가 민망할 정도로 아무 준비 없이 살고있다. 재택근무라는 이유도, 체육관, 집(이라 쓰고 사무실이라 읽는다) 으로 이어지는 생활 반경의 탓도 있겠지만, 외출용 옷을 사는 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사시사철 편한 옷이면 그만이라는 생각만 들면서, 컴퓨터 앞에서 쇼핑할때나 백화점엘 가도 남성복은 지나쳐도 운동복, 등산복 못지나치는 것을 보니, 이제는 내가 아저씨라는 것이 운명 뭐 이런게 아니라 눈 앞의 현실이라고 누군가가 일부러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운동복과 운동화 밖에 없는 삶 덕분에 몸이 편해졌지만, 몸매도 어릴 때 보다 편해져버렸다. 분명 아침마다 거르지 않고 운동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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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4월 에세이(내열유리, 아저씨, 짐, 밑 빠진 독, 숙제)
[1]
2월 1주차 <밸런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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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면담 기간이라 동료들과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우리에 대해 이번주 내내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 입버릇처럼 동료들에게 세상엔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이 셋의 균형을 잘 맞춘다면 우리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길 하곤 했다.(쓰고보니 꼰대짓이었네..) 작년부턴 혼자서 하는 일보단 여럿이서 하는 일의 균형을 생각하는 일이 잦다. 내가 무작정 뛰어버려 해야 하는 일에 구멍이 생겨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균형맞춤을 소홀이 하면 누군가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요즘은 자기검열을 하는 시간이 꽤 늘었다.
아쉬웠던 일들과 관계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아니면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어떤 길을 갔어야 후회가 덜했을까 싶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럽고, 속시원한 적 없이 아쉬운 것부터 떠오르는 것이 매번 후회스럽다. 한편으론 누구든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후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받아들여주길 바랬고, 아무 일도 없는 듯 괜찮은 척 하지 않고 먼저 말 한마디를 했어야 했다.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한방에 만나는 일은 어쩌면 1에서 45 사이 숫자 중 6개를 맞추는 것 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이건 3개 중 하나만 맞춰도 정답 인정이다. 이 쉬운 문제를 자꾸 틀리기만 하니 속시끄러울 수 밖에.
아직 23년이니까 다음주부턴 후회를 줄여야겠다. 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고싶다.
[2]
2월 2주차 <쓸모있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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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불러줘야 비로소 꽃이 되지만, 나도 내가 꽃인줄 알아야 남들이 꽃이라 불러줘도 꽃인줄 안다. 내가 꽃이 아닌데 남들이 불러주지 않는다고 착각하진 말고.
[B] 2024년 2-3월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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