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2024.12월 에세이

[1]
남쪽은 아직 한겨울을 맞을 준비가 덜 되었고, 북쪽은 가을을 급히 떠나보냈다. 여름옷을 정리할 수 있지만, 나답게 미뤘다. 어쩌면 다가올 여름까지 옷장으로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나는 긴 옷을 입으면 될 것을 답답하다 마다하고 작년에 산 열풍기를 창고에서 꺼내 콘센트를 꽂아둔다. 가까이 가면 불 나지 마라고 알아서 눈에서 화를 내려놓는다. 자기 전 천천히 좌우를 살피는 주황색 눈을 멍때리고 보자니 아직 가을 같기도, 겨울 같기도 하고 불은 아닌데 불처럼 뜨거운 요상한 기분이 든다.
쥐불놀이를 해 본 적은 없다. 군 복무 시절 가을에 대공 근무를 설 때면 성환읍 어디 논에서 불길을 관측하고 신고하더라도 그냥 넘어가던걸 경험하고선 짚불태우기와 쥐불놀이를 알았다. 초저녁부터 뜨거운 불을 힘차게 돌리고 던진다. 한참을 돌리다가 마치 투포환 선수가 된 것 마냥 저멀리 던져버리는걸 상상한다. 어디로 어떻게 던지든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불지르기가 허용되는 시간과 공간이라. 세상 천지에 이런 곳이 어디에 있나 싶다. 잠깐 내가 던지는 상상을 해본다. 이내 내가 불이 되어 던져지는 상상으로 옮겨붙는다. 한 발짝 옮겼을 분인데 기분이 묘하다. 멀리 던져지길 바래야할까 아니면 원심력을 견디고 버텨 이 자리에 머무르기를 바래야할까. 이걸 견디면 나는 더 나은 불이 되나? 견디지 못하는 것이 날아가는건가 아니면 날아가고 싶어 날아가는건가? 어느 방향으로 던져질까?
이미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며 더 검붉게 변하고 있는 나는 내일을 전혀 모른다. 내가 떨어질 곳도, 그 곳에 짚이 있어 나를 옮겨갈지 혹은 차가운 도랑이 나를 소멸할지 역시 모른다.
<쥐불놀이>
[2]
나는 소설 읽기를 싫어했다.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가늠하기 어렵게 덮어둔 이야기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남의 상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께름칙하다.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았지 온갖 고고한 척 하는 것이 역겨웠다. 그래서 영화도, 드라마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누르고 이해하려고 에세이 읽기에 집착했었고, 몇년간 도움을 받았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상 없는 원망과 증오를 버리고 묻고서야 다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가끔 들추기 싫은 무언가를 봐야만 하는 기분도, 나에게 닿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지옥같은 소설보단 숨쉬는 허무함과 환멸이 낫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분은 위로와 체념 사이를 오간다. 나는 그 온갖 고고한 척이 부러웠던 걸까. 역겹기만 한, 서서히 부정당하는 나는 다시 소설 읽기가 싫어졌다. 살고 싶은건지, 그만두고 싶은건지 모르겠지만 아닌 척 ㅈ나 글자 못쓰는 손으로 고고한 척 필사한다.
<현실같지 않은 소설>
[3]
누구에게 애원해야 할지 모른 채 올해를 견디고 이거낼 힘을, 용기를 애타게 구걸한다. 숨은 빠르게 소멸하고, 기억은 흉터가 짙다.
<이기적인 마음>
[4]
하늘이 꺼지고 땅이 뒤집혔는데 세상이 쏟아지지 않을 확률과 기회주의자가 인간일 확률은 도찐개찐이다. 세상이 뒤집어진건지 아니면 내 눈깔이 뒤집어진건지는 이젠 나만 모르는 것 같다. 손바닥 뒤집듯 핸드폰만 뒤집어도 가만있던 내가 돌아버린 놈이 된다. 비겁한 싸움엔 장사가 없다.
<2024회고 분노편>
[5]
부인할 수 없이 30대 후반이 목전이라, 시간에 가속 할증이 붙었는데, 매정하게도 느슨해질 생각이 없어보인다. 드로리안이라도 있으면 되감을텐데, 이젠 고속도로를 올린 듯 한방향으로 우리는 악셀만 밟는다.
서른여섯의 나는 술자리도 거의 가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꺼려하며, 생일 축하 선물을 잘 보내지 않고, 어제 당신의 오해에 화나거나 억울하거나 슬퍼도 우는 일은 거의 없고, 우리라고 부를 수 없는 기억을 모른척한다. 다만, 꿈자리가 가끔 사납고, 숨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종종 있고, 2주에 한번 그간 상태는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만남을 반복한다.
세상이 흉흉하고, 아직 나를 잘 몰라서 우리 역시 모르지만 대책 없는 삶을 버텨내서 고맙다. 내년도 잘 버텨보자. 살아내자. <2024.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