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콜스왑>
중고서점에 들러 집에 온 뒤엔 빼먹지 않고 알콜스왑 두어개를 꺼내어 집으로 들인 물건들을 닦으려 한다. 약 3년간의 전염병 기간 중 마지막 해에 호되게 앓고선 알콜스왑은 잊지 않는다. 대충이라도 닦고선 있어야 할 곳에 놓아야 요상한 불편한 마음을 누를 수 있다.
소독하여 무해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다. 나를 향하는 다른 것들은 소독 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받아야 하는 답답함을 물건이라도 알콜스왑으로 문질러야 속이 시원한 것이 꼴사납다. 파리가 꼬이는걸 보면 가장 더러운건 나일 수도 있겠다 하면서 책을 문지를게 아니라 나를 문질러야 할텐데 싶다.
결단력 없던 나는 수십번 닦아도 시원찮을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선 꽤나 아픈 시간을 보냈다. 이젠 대차게 물건을 닦을지, 나를 닦을지 망설이지 않고 손을 움직일 수 있다. 내 몸에 구멍이 뚫려버린줄 이제사 알았다. 뻥 뚫려버린 나를 먼저 막을지, 눈 앞의 것들을 닦아내야할지, 알콜 스왑을 어디에 어떻게 먼저 써야할지 나는 당최 방향을 모르겠다.
주사 맞고 쓰는걸 쓸데없는데 쓰고있었나.
[2]
<멍청비용>
오늘 하루만 해도 지하철을 거꾸로 타질 않나 기차 시간 착각하고 이미 떠난 기차 찾고 있질 않나. 한심하다.약은 것 보다 낫지 않나 싶다가도 내가 멍청한 건 나에게 죄다. 벌써 이것저것 망가진다. 나아진 것 없이 멍청하게만 만드는 약을 또 꼬박 챙겨먹는건 잊지 않는다.사는데, 살아나가는데 온 정신을 집중한다.
[3]
<멍청비용2>
집 돌아와서 주문해둔 쿠팡프레쉬 문앞에서 보는데 쌔하다. 왜 다 두개씩 왔나 싶어서 주문내역 봤더니 두개씩 시킨거 맞네. 다 다른 판매자로 시킨건 뭔데..
이쯤 되니까 무섭다. 어떡하지 내정신.
[4]
<삼켜버린 것들>
전염병 전후로 겪은 지독한 것들은 여전히 체한듯 메스껍다. 아침저녁으로 고인 생각을 약으로 비워낸다. 소나기처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다가도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나를 원망하고선, 비내리는 시간을 원망한다. 그러고선 시간을 빨리감으려, 덜 원망하려 머릿속 상상하고 싶지 않은 불쾌한 시나리오 더미를 약과 함께 삼켜넘긴다.
요며칠 하릴없이 엄지를 놀리다 불편한 모습을 마주했다. 악용의 대가는 한껏 가벼워보이고, 반작용으로 나를 마주하는 짐은 계절을 몇바퀴 돌고서도 가시질 않는다. 그 무게가 다름을 원망한다. 덜어주려는 손도 흐린눈으로 못본척하고선, 주홍글씨를 거울 속 이마에 찍어버렸다. 남들은 쉽게 누리는 것이 나에갠 어려웠고 더이상은 쳐다보지 않겠다 마음먹었었다. 더위에 흐르는 땀은 닦아서 숨겨도 숨길 수가 없다. 자연 재해마냥 시간도 상황도 나는 막을 방법이 없다.
에어컨 아래서도 숨길 수 없이 식은땀이 나는 것을 보니 나는 할 말과, 엉망으로 보내버린 시간을 씹지도 않고 잘못 삼킨 것이 분명하다. 약은 왜 안듣는건지 알면서도 모르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같은 방향으로 소파에 기대눕고선 진정되길 기다리다가 날이 샛다. 뭘 삼킨걸까. 뭘 토해내야하는걸까.
[5]
<긴 잠>
머리만 대면 잠드는 천성은 복잡한 머릿속에도 어디 가지 않고 고맙게도 자리를 지켜준다. 다만 최근 몇달간 다양한 꿈을 자주 꾼다. 왜 꿈을 많이 꾸게 된 것일까 떠오르는 이유가 몇가지 있고, 대체론 해결이 어려운 것들이라 그러려니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꿈이 잠을 오래도록 방해하는 것을 보아하니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좋은 꿈이면 그래도 좋으련만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느껴지기론 새벽 세네시 즈음에 머리를 뒤집어 깨우곤, 진정하는데 고요한 한시간을 쓰고선 더운 여름 맞이 빠른 해와 함께 다시 잠든다. 어떻게 잠드는지 모르게 기절하고 꾸고 진정하고 기절하기를 반복한다. 다시 깨고 꿈도 깨고 싶은 불쾌함을 잠깐 들여다보다가 출근 도장과 동시에 돈버느라 잊는 순환을 반복한다. 내가 사는 세상에 큰 지진이 나서, 눈 앞의 고층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다 깨기도 하고, 용서하지 못한 이들이 하나씩 나를 괴롭게 하는 모습에 깨기도 한다. 엊그제엔 새끼고양이에게 손가락을 깨물려 고양이 이빨이 틀니마냥 손가락에 박혀있는걸 바라보다 새벽 네시가 됐다.
게으름을 타고나서 그런지 요즘은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다. 잠드는 것, 잠들어버리는 것이 좋았다. 긴 잠 자는 나는 꽤 오래전이었던 것 같이 기억이 흐리다. 여태 나를 후려치고 지나간 몇가지 설명할 수 없는 병들도 잘 풀어왔는데. 하루에 두세번씩 갑자기 찾아와서 목구멍에서 심장박동을 울려버리는 것도, 풀리는 숙제인 줄 알았는데.
긴 잠을 준비하고싶다.
2024.07.24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