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변한다던 지문도 늙으니까 변하더라. 한두번 말썽이더니 요즘은 알아먹지도 못한다. 비밀번호 여섯자리 누르는 것도 귀찮아해서 멀쩡한 도어락을 바꾼 것도 내 탓, 늙은 것도 내 탓. 조져버린것도 다 내 탓.
비는 것 마냥 핸드크림을 손에 바른다. 빌고 빌면 없던 지문도 나아지려나 아니면 닳을라나 <지문>
[2]
웃는 얼굴에 침 뱉기는 어렵단다. 미움인지 사랑인지 감 안잡히면 일단 웃고 나중에 울어도 되겠다.
근데, 웃으면서 침 뱉기도 쉽다고 했는데, 우리는 왜 그 쉬운걸 못하나. 울면서 우는 얼굴에 침뱉는 어려운 것도 하는데. <침>
[3]
그는 마지막까지 말이 많았다. 내도록 억울함을 나에게 들이미는동안 애꿎은 냄비만 끓다가 퍼석해졌다. 내가 이야기 한들 분명 한소리 하기 전으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이런 일엔 보통 이기고 지는 것 없이 허무하고, 한껏 오만했다 부끄러운 내가 남는다. 그래서 나는 도망을 선택했다. 여유 없는 도망자의 말에는 힘이 없다. 그래서 그냥 듣는다. 아니 들어야만 한다. <아쉬운 소리>
[4]
두통은 이유를 알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뭐든 인과관계가 있다지만 이것만은 예외일수도 있겠다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머리 아픈 와중에 띵한 이마를 손바닥으로 받치고서 생각한다. 지난 밤에 선 잠을 자서 아픈가, 체헤서 아픈가, 환기가 덜되어서 그런가… 왜라고 묻고 생각할 수록 말 그대로 골때리는 일이다.
다시 편두통이 온다. 오늘은 모르겠고 바쁘니까 띵하고 자시고 그냥 할 일 할란다 했더니 아픈걸 까먹고선 밤늦게서야 다시 아픈걸 안다.
까먹는 법을 알고있었다면 긴 시간동안 우리는 덜 아팠을 수도 있다. 항상 기억하는 인간이 괴로운 법이다. 주로 멍청한 나는 왜 까먹어야할걸 기억해서 이러고있나. <까먹었습니다>
[5]
대게 의자에 앉아 살아 그랬을지 모르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바닥에 앉아서 내친 김에 일도 좀 하다 다리가 저려 이내 일어났다. 의자로 돌아갔지만, 다리저려오면 풀 방법도 딱히 없지만, 묘한 기시감 때문에 좋을 대로 다시 바닥에 앉아서 할 일을 한다. 꼬인 우리를 달리 보는 방법은 어쩌면 그저 바닥에 앉기만 하면 되는, 저리지만 쉬운 일이었을 수도 있다. <바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