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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주차 <밸런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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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면담 기간이라 동료들과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우리에 대해 이번주 내내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 입버릇처럼 동료들에게 세상엔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이 셋의 균형을 잘 맞춘다면 우리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길 하곤 했다.(쓰고보니 꼰대짓이었네..) 작년부턴 혼자서 하는 일보단 여럿이서 하는 일의 균형을 생각하는 일이 잦다. 내가 무작정 뛰어버려 해야 하는 일에 구멍이 생겨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균형맞춤을 소홀이 하면 누군가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요즘은 자기검열을 하는 시간이 꽤 늘었다.
아쉬웠던 일들과 관계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아니면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어떤 길을 갔어야 후회가 덜했을까 싶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럽고, 속시원한 적 없이 아쉬운 것부터 떠오르는 것이 매번 후회스럽다. 한편으론 누구든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후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받아들여주길 바랬고, 아무 일도 없는 듯 괜찮은 척 하지 않고 먼저 말 한마디를 했어야 했다.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한방에 만나는 일은 어쩌면 1에서 45 사이 숫자 중 6개를 맞추는 것 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이건 3개 중 하나만 맞춰도 정답 인정이다. 이 쉬운 문제를 자꾸 틀리기만 하니 속시끄러울 수 밖에.
아직 23년이니까 다음주부턴 후회를 줄여야겠다. 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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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주차 <쓸모있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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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불러줘야 비로소 꽃이 되지만, 나도 내가 꽃인줄 알아야 남들이 꽃이라 불러줘도 꽃인줄 안다. 내가 꽃이 아닌데 남들이 불러주지 않는다고 착각하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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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주차 <짧은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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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가까이 길러오던 머리를 짧게 잘랐다. 작년 이맘때부터 막연히 긴 머리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1년을 보냈다. 긴 머리로 향하는 여정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머리 만질 시간이 없어(사실 머리 잘 만질줄 모름) 매번 모자를 쓰고 다녔다. 내가 모자를 좋아하는줄 아는 분들도 더러 있지만,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참고 참아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니 부끄럽게도 지저분한 머리카락이 모자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운동할 때에 머리에 무얼 써도 눈을 찔리지만 그러려니, 모자를 썼지만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그러려니 하며 몇달을 보냈다. 사실, 막연하게 긴 머리를 하고 싶다였지, 긴 머리로 파마를 하고 싶다거나, 어느 유명한 누구처럼 머리를 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그림은 없었다. 번뜩 왜이러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선, 그 길로 긴 머리를 미련없이 잘라냈다. 짧은 머리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눈에도 보이고, 매번 불편함만 가져다주는 긴 머리를 1년이나 참고있는걸 보면 난 목적지 없는 불편함에 쉽게 익숙해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불편함이 나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잘 생각해보면 분명 의미 없는 불편한 일들이 장맛비 마냥 후두둑 쏟아질 것이다. 방향도 없는 고민을 잘 골라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하나씩 알아차리고 미련없이 정리하는 기분도 꽤 좋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을 세월로 그대로 맞아버린 내 꼴은 긴머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가 길 때 까지 견딘 것도 내 의지였고, 그걸 시원하게 날린 것도 내 생각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1년을 지내고서야 생각을 털어낼 수 있는 판단과 용기가 생긴걸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1년의 인고(?)는 꽤 의미가 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오던 길에, 의미 없고, 갈 곳도 없던 긴 고민도 짧아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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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주차 <눈에 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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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엔 CD는 어울리지도 않고, 잘 꺼내듣지도 않게되다 보니 자연스레 CD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적어지고, 서점 구석에서 최신 kpop 아이돌 포토카드나 볼 수 있으면 다행인 정도로 CD를 살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30대 중턱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아저씨의 어린시절을 떠올려보자면, 10대를 지나 20대의 중턱을 넘어가던 때 까지 주변 친구들의 생일이 오면 흔히 좋아하던 CD를 건넸다. 스트리밍에, 알고리즘에 사육당했다고 반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찾기 쉽고, 어쩌면 찾지 않아도 알아서 눈앞에 들을 만 한 음악을 갖다바쳐주는 추천 알고리즘에 눅눅하게 절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을 알고리즘에 절여내서 그 돈으로 책도 사고 밥도 먹고 있다. 음악이나 책으로 진심을 주고받던 낭만은 다 어디로 갔나. 그저 한 벽을 채우기만 하는 애물단지 취급이나 하고 있는 꼴을 보기 싫어 눈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결국 몇년 전에 어릴적부터 모아왔던 CD들을 중고로 다 팔아버렸다.
스트리밍에 절여진 삶은 나쁘지 않다. 좋은 밥상 알아서 찾아주고 먹여주고 하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있겠나. 또 아저씨의 어린시절을 떠올려보자면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 옛적의 나의 디깅 방식은 라디오나 KM TV같은 케이블 에서 멋진 형누나들이 들려주는 ‘방송 의존식 디깅’ 이 쏠쏠했다. 어쩌다 라디오나 티브이에 좋은 음악이 나오면 음악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렸다가 가수와 노래 제목, 앨범을 이야기해줄 때 잽싸게 받아적고 기억했다가 신나라레코드에 달려가서 피같은 용돈으로 CD나 테이프를 하나씩 사모으고 질리도록 들었다. CD 속지의 가사지를 몇번이나 봐서 엣지가 너덜너덜 해지면 테이프로 붙이던 시절이 있었단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기엔 아직 젊은 나이인 것 같은데, 요즘은 좋은 노래나 음반을 쉬이 기억하기 어렵다. 기억의 단서가 있다면 머릿속으로, 입 밖으로 쉽게 내놓을텐데 요즘엔 음악에 추억이라 할 만한 힌트가 없다. 유일한 단서라 해 봐야 엄지손가락 두개로 찾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 말곤 있을 리가 없다. 기억하기 위해서 요즘엔 다시 CD와 책을 사모으시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기억하기 쉽고, 기억에서 살짝 사라진다 하더라도 금새 눈에 보이는 단서로 머릿속에 강하게 도장을 찍어 자국을 남긴다. 기억한다는건 사소하면서 아름다운 일이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잘 보이게 전시해두고, 곳곳에 기억을 따라가 꺼낼 수 있도록 수많은 힌트와 이미지를 던져놓았기에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미지는 흐릿해지고 이정표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음에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좋던 나쁘던 강렬하고, 소중한 것임이 분명하다. 기억하는 것도, 기억되는 것도 모두 소중하다. 더 늦기 전에 잊지도 잃지도 않고 싶은 소중한 것들을 내 눈에, 머릿속에서 언제든 꺼내서 기억할 수 있도록 오래 그 앞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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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주차 <걸레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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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서 생각보다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매일 집을 쓸고 닦는 일이다. 이사하며 큰 맘 먹고 장만한 로보락 덕분에 쓸고 닦는 일 대신 물통과 소모품만 갈아주는 일에만 신경쓴다. 문명의 이기란 손발을 자유롭게 하지만, 아직 나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도 당연히 있다. 이사하고 나서 얼마동안은 매일 손수 청소했지만, 요즘은 이틀이나 사흘에 한번 정도 매일 먼지털이를 들고 팬던트, 스탠드 조명, 선반을 쓸고 다닌다. 여러 곳을 하이파이브하듯 스치고 지나가지만 걸레받이 위는 청소하기도, 반면에 잊기도 쉬운 곳 중 하나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부끄럽게도 난 걸레받이 위를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우연히 하얀 걸레받이 위에 쌓인 먼지를 보곤 이미 봐버린 이상 가만 둘 수는 없어, 먼지털이 코스에 강제로 추가해버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나온 주는 연휴도 있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어젠 오랜 친구들을 만나 심각하고 진지하면서 웃긴 이야기도 몇시간이나 했다. 심지어 오늘은 연차까지 쓰고 하루종일 집안일도 하고 잠도 잤다. 그런데 이 늦은 밤 하얀 걸레받이 위 소복이 쌓여가는 회색 먼지를 훑을 생각은 커녕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나는 잘 살고 있는건지, 잘 쉰게 맞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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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주차 <멍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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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아니 최근 몇년간은 주중엔 정신이 없다. 일이 바쁘다고 하기엔 우리 모두 대부분 바쁘게 살고 있기에 ’나는 너무 바빠요‘ 라고 이야기 하는건 주관적인 생각인 동시에 앓는 소리 같아서 ’굳이?‘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내가 정신 없는건 일종의 멍청이슈인데, 요지는 내 손과 머리가 더딘 탓이다. 너나 나나 24시간 똑같이 쓰는데도 난 참 더디다. 내가 잘나고, 잘하고, 똑똑했다면 쉬이 처리했을 일들이지만, 인간이 단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건 불가능에 가깝고, 생각보다 나는 메타인지가 비교적 좋은 인간(의사선생님 피셜이지만, 이 역시 나를 그냥 위로하기 위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이기 때문에, 그냥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걱정하고 싶을 때 양껏 걱정도 하며, 못하는건 못하는거고, 잘하는건 잘하는거지 하며 그러려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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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주중을 보낸 이후부턴 주말이 여느 직장인처럼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진다. 과거 한량처럼 세월아 네월아 하던 지난 시간을 모조리 돌려서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붙어서 자는데다 쓰고 싶을 정도로 주말이 작고 귀하고 소중하다. 주중에 들여다보지 못한 개인적인 일들이나 경조사, 타인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그보다 나의 심신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며 자아 존재감을 쉬이 드러낸다. 지인이 주말에 뭐하냐고 물어보면, 대게 약속 있다고 말하는데, 그건 내가 쉬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의미한다. 나와의 약속이 제일 중요한거 아니겠는가? 언제 한번 그런 휴식을 원하는 자아의 존재감을 누르고 그 다음주를 자연스럽게 맞이하려 했다가 나가떨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 가능한 시간을 내서라도 쉬려고 한다. 책읽다가 멍때리고, 커피마시다 멍때리고, 산책하다 멍때리면서 끝나는 것이 나의 주말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 멍때리지만, 결국 실패하고 고민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주말 내내 창밖을 보면서 멍때리지만, 보는 것이 풍경일지 지난 시간일지 이제는 나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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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주차 <시간 파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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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이 30대 중반 지나오며 생긴 여러가지 변화나 습관들 중, 가장 큰 부분이지 않나 싶다. 사람들 속에서 시끄러움을 참아가며 지내는 것이 스트레스를 낮추기 보단 되려 쌓고 있다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후로, 조용한 장소나 환경을 찾아다니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업의 특성 상, 조용한 환경인 것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입만 털다 퇴근하는 요즘의 내가 아마 팀에서 제일 시끄러운 사람이 아닐까 싶어 부끄러우면서, 아 역시 나는 여러모로 모순이 많은 인간이구나 싶어 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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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눈에 걸렸는데 귀찮아서 미뤘던 집정리를 하거나 바닷길을 걷거나, 가끔 머리 저편으로 옮겨뒀던 일을 영영 까먹기 전에 돌아보고 정리한다. 손 많이 가는 집안일이나 아침 바람 쐬기가 끝나면, 그 길로 곧장 사람이 없는 번화가에 가서 쇼핑도 하고 커피도 마시러 다닌다. 거창하게 뭐 대단한걸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에너지도 없어서, 해야 할 일로 그득했던 주중을 뒤로하고, 그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스케쥴 가득해서 10분 틈이 소중할 지경인 채로 5일을 보내고 토요일날 눈 뜨자마자 ’토요일 개꿀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눈 뜬 시간을 나름 살뜰하게 잘 쓰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중 물리적으로 25시간이거나 23시간인 적은 없는데, 유독 주말 오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다‘ 보니, 눈 뜨고 몇시간 안되는 그 잠깐을 쪼개고 쪼개서 하고 싶은 일들을 꾸역꾸역 틀에 맞춰 넣고선 괜히 더 빠른 걸음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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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께서 굳이 꼭두 새벽에 사우나를 다니시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몇시간 일찍 움직인다고 주차도 쾌적해, 도로도 쾌적하다. 물건도 느긋하게 고르고 커피도 느긋하게 마신다. 단지 몇분, 몇시간 일찍일 뿐인데 하루를 덤으로 받은 기분이라 괜히 더 좋다가도 지금처럼 월요일을 앞두면 여전히 마음이 착잡하다. 직장생활 만 8년 넘어가도 이건 여전히 어렵다. 주말 시간의 파도에는 잘 올라타는 것 같은데 매번 잘 내려오는데 실패하고 물속에 허우적거리며 월요일 파도에 시원하게 뺨맞아버린다. 매번 이렇게 쫓기고, 균형을 잃고 휩쓸리기 다반사인데, 누가 정답 좀 알려줘라. 일요일에 일하면 월요병이 없어져요 이런말 할 거면 말하지도 말고. 애꿎은 시간만 잘 타들어간다. 파도 타기 두렵다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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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주차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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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좋아서 몇천원에서 몇만원만 내면 핸드폰 용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마구 찍어둘 수 있다. 아마 아이폰 용량이 부족해서 앱도 지우고 사진도 지운 기억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세대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도 가까운 사람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거나, 좋은 장면을 마주칠때면 여지 없이 셔터음을 남발한다. 그러고선 아이폰을 내 머리 하드웨어 중 하나인 마냥 여기곤 돌아보지 않은 채로 수 년을 지내왔다. 동생을 배웅하는 길에, 지난번 가족 여행으로 다녀온 산과 음식을 떠올리는데 한참을 고민했다. 분명 같이 다녀온지 두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동생은 설명하고 나는 기억못하는 어이없는 대화가 이어지다가, ’나중에 사진 찾아보면 기억하겠지‘ 하곤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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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로 눈을 가리고 충분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아이폰이나 메신저가 아닌 머리로 기억하는 일이 흔치 않다. 일정표 없이는 일주일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고, 눈과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입력에 기계처럼 하는 반응에 하루의 대부분을 쏟는다. 느긋하게 하고 싶은 반감같은 욕망이 끓어, 괜히 천천히 걷고 천천히 읽고 천천히 마신다. 천천히 씹고 뜯고 맛보고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나도 이번 생이 처음이라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한데, 씹어야 뜯기도 하고, 그 담엔 맛도 느끼고, 즐길 수 있을텐데 씹기도 전에 삼켜온 것들에 점점 체기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이러면서도 이번주에 찍은 사진들 뭐 있나 보면서 또 이쁜거 좋은거 보면 찍어댈 찐한 모순의 맛이 나에게서 난다.
2024년 3월 28일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