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 딱 10일이 지났다.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라고들 하지만, 내게 지난 열흘은 희망찬 출발이라기보다 몽롱한 열병을 앓는 꿈속 같았다.
나는 지금 두 딸의 아빠다. 하지만 허용치를 꽉 채운 타이레놀 기운으로 버티고 앉아 있는 지금, 나는 든든한 가장도, 아이들의 보호자도 아닌 것만 같다. 그저 자아가 분열된 한 남자일 뿐.
병원에서 뛰쳐나와 사탕을 고르는 모습. 이걸로 차라리 잘 버텨주길 바랐지만, 그저 헛된 기대였다.
균열은 분만실에서부터 시작됐다.
첫째 태미는 그날따라 유독 짜증이 심했다. 아마도 부모의 사랑을 나눠가질 경쟁자가 곧 등장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아이도 지쳤을 것이다. 병원 대기실에서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3살 아이에게 의젓함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건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논리보다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앞섰다. 나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내가 세상에 내놓으려는 이 아름다운 생명의 탄생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아이에게, 그리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좌절했다.
마침내 태미가 잠들었고, 나는 그 짧은 평화 속에서 아내의 분만을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몇 분 가지 않았다. 태미가 깼고, 나는 절정의 순간에 아내 곁이 아닌 아이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아이가 분만 현장에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것, 비록 그것이 '아이를 돌보는' 임무였다 해도 나는 아내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이 된 기분이었다.
아내가 출산하는 내내 이렇게 애를 안고있는 자세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무력감은 집으로까지 이어졌다.
병원 규정상 12세 미만은 병원에서 숙박이 안 되기에, 갓 출산한 아내와 신생아를 뒤로하고 태미를 데리고 집으로 와야 했다. 도움이 절실한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또다시 아내를 돕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태미에게 열이 나기 시작했다. 18시간의 병원 대기, 엄마와의 강제 이별이 3살 아이를 병들게 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태미 때문에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내를 보러 갈 수 없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순 없었지만, 마음은 아내 곁에 있었다. 나는 내 무력감을 태미와 태미의 열 탓으로 돌렸다.
결국 나도 열이 났다. 그리고 집에 온 아내에게 딱 달라붙어 울면서 기침을 해대는 태미 때문에, 아내 슬기마저 병이 났다. 온 가족이 환자가 되었다.
새벽 4시. 신생아 수유를 위해 일어난 우리 부부 곁에서 태미도 깨어 엄마를 찾는다. 엄마한테 해도 되는 요구와 안 되는 요구를 설명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 나는 그저 남편이고 싶은데, 아이를 막아서는 문지기가 된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태미가 동생을 괴롭히지 않고 좋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난 10일간, 내 눈에 비친 태미는 내 '숙적(Arch-enemy)'이나 다름없었다.
이 출산의 과정에서 나는 행복했는가. 미소를 지은 적있는가.
이 모든 감정을 앞으로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이건 고작 새로운 챕터의 시작일 뿐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 생에는 자식을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해는 마시라. 내 아이들은 축복이다.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지금 내게 아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느끼고 싶은 감정을 차단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돌보지 못하게 만드는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아빠들에게도 물어봤다. 어쩔수 없다 하더라. 여전히 나만 이 깊은 토끼굴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외로웠다.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원망이나 좌절감 없이 온전히 축복으로만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12.10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