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숨 쉬세요>
iphone 15 pro, Haeundae, Busan
남쪽으로 내려온 것에는 나의 시덥잖은 강박들을 내려놓고자 함도 있었다. 강박과 스트레스와 자격지심은 세상에 못 할 일 들을 하나씩 지워준다. 10만큼으로 되지 않으면 20, 30을 붓는 나를 쉽게 생각한다. 노력은 규모의 경제와 같아서 열심히 해서 안될 일이 없는건 영 없는 말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도 했더랬다. 없는 20, 30 을 만드는 것이 연금술이 아니라, 애써 흐린 눈 했던 중요한 것들을 영영 흐리게, 보이지 않게 강제 상환한다는건 보험 서류로부터, 멀어지는 다양한 것들로부터 듣고 보고 느낀다. 꼬인 나를 진정시키느라 갈아넣은 시간 빚의 늪은 어둡고, 길고, 무겁고, 답답하고, 못 할 일 하나를 지우면 못 한 일 2개를 만들어서 가끔은 들숨도, 날숨도 턱턱 막힌다.
강박은 분열하고 증식한다. 나도 모르게 휴일엔 서재로 들어가지 않는 강박.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는 강박. 뛰어도 느리다는 강박. 그만 먹어야 한다는 강박.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어제는 잘했어야 했다는, 오늘은 잘 해야 한다는, 내일은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
여전히 많은 것을 나 스스로에게도 숨기고 있지만, 체육관에서 집으로 출근하고, 집에서 밖으로 퇴근하는, 변수가 없는 삶으로, 안전한 삶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많은 이유로 300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일하면서, 많이 얻은 만큼 많은 것을 잃을 각오로 남행열차에 몸도 싣고 꿈도 싣고 떠나왔다. 욕심도 많이 내려놓았고, 꽤 다양한 것을 정리하고, 정리당했다. 사소한 출퇴근이 무박 2일의 랠리로 이어져도 몇년 하다 보니 피곤해도 참을만 하고, 가득 찬 일정도 그냥저냥 할 만 하다. 매주 오며가며 타는 SRT도 이젠 매크로 없이도 예약하는 끈기도 생기고, 비용은 잊고 살려고 한다. 지난번엔 약을 늘리고, 엊그젠 자다가 혀를 씹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아있다. 그래도.
예상 못할 일은 만들지 않는 불가능과 싸우고 있는 한심한 나는 숨을 잠깐 참았다가 쉬고선 숨쉬는 강박을 생각한다. 아저씨 숨 쉬세요. 숨.
[2]
<무감각-감각하기>
Rico GR3x-urban, Hwangnyeong Mountain, Busan
며칠 간격으로 무감각과 예민함을 오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봐야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외래에서 숙면이 중요하냐 평시의 안정이 중요하냐 받은 질문에 조금 생각해보고 숙면이라 했다. 숙면과 안정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해오고 있다. 잘 자기 위해서 지쳐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거나, 교통사고처럼 나를 예상치 못하게 신경쓰이게 만드는 많은 것을 자기 전엔 잠깐 머리속에서 치워버리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찾고 몰두한다. 최근 일주일은 행복할 만한 것들로 덮고 감싸고 몰아부치고 지쳐 잠들었음에도 숙면은 여전히 어렵다.
같은 날이어도 어느날은 무향무취에 투명하기도, 좋아하는 룸스프레이 향이 스친 것 같기도, 하늘이 두쪽날 듯 회색 냄새가 나기도 한다. 쓴 맛이다. 다른 날인건지, 다른 나인건지 조금 생각해보고 내 탓이라 했다. 해결해주지도 않을 남들에게 폭탄돌리는 것은 요즘 들어 더 진물난다.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일을 겪어도 나는 다르개 받아들이는걸 보면, 아직도 모순적인 인간인 것도 진물난다.
개구리가 살기 적정한 온도는 20도 전후라고 한다. 38도의 사람 손이 빠르게 닿는 것은 고통이지만,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뜨거운줄 모르다가 죽어버린다고 한다. 보기좋게 늘어져있는 시간은 느리게 가고, 돈버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 좋은 삶은 가끔 시간의 속도와 관계 없이 뜨겁기도, 미적지근하기도 한데, 어쩌면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에 무감해진것은 아닐지 걱정보단 확신이 앞선다. 망가지고선 알아챈 모습이 닮았다. 고통엔 연습이 있지만, 죽음엔 연습이 없다.
[3]
<도쿄>
Rico GR3x-urban, Shinjuku, Tokyo
19년 말까지 일하러 오가고선 실로 오랜만에 온다. 내 돈주고 놀러오면 즐거울 줄 알았는데, 빈 페이지를 찾기가 어려워진 여권 도장의 절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보면 돈쓰며 놀러와도 설렘보다는 기시감에서 오는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나보다. 그 마음을 누르는데 하루를 썼다. 긴 시간 애증이었던, 이젠 남길 사랑도, 증오도 없을만큼 질질 끌려서 닳아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일하는 와중에 내가 일하던 곳으로 덜컥 비행기를 끊는 정신나간 짓을 받아주는 곳도 여기 뿐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개나 줘버린 5년전의 나를 찾으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옛날이랑은 다른 사람이라고, 초심 운운하는 노래가 때맞춰 흐른다. 이 동네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만 같다. 여긴 그대로고, 밀물 썰물마냥 나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4]
<개꿈>
Rico GR3x-urban, Samcheok-si, Gangwon-do
개꿈의 고리는 아마 4개월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김없이 3시 전후로 깨는 것, 그리고 개꿈인 것을 빼면 그다지 일관적이지도 않은, 실로 다양한 꿈을 꾸고 있다. 이 개 같은 꿈은 창의적인 상황과 방식으로 나를 깨우고, 어지럽히고선 세면대에서 빠져나가는 물 마냥 기억을 물고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잡을 수 없어서 더 열받는데, 애매하게 남아 고여버린 물때처럼 께름칙함은 며칠을 간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기억이 곪아가도록 나도 모르게 소독을 거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독도 못 하는데 꼬박꼬박 챙겨 먹는 약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고, 괜히 약 탓을 해본다.
하기 싫은 순서대로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떠올리지만, 이내 여전히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선 잊는다. 이제는 하소연할 대상도 없는 그 무언가들을 저 깊은 곳에 묻어놓고선 시간으로 다지고, 덮어서는 어디에 묻히는지도 모르게 하고 싶었다. 아직 덜 덮었나 보다.
알았으면 그렇게 했겠냐마는 내가 묻은 게 곪아 터져 지뢰밭까지 된 줄 나는 몰랐다. 나는 오늘 밤 내가 만든 지뢰밭 개꿈 길을 또 만날 것이다.
나는 치우지 못하고 또 요리조리 피해 갈 것이 뻔하다.
2024.10.0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