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2025.01 에세이

[1]
요상하게도 싱크대는 항상 설거지가 쌓여서, 빈 싱크대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겨울만 되면 주부습진에 고생하고, 식기세척기를 쉴 새 없이 돌리는 나는 억울한 노릇이다. 다른 집 사정을 모르지만 그릇을 많이 쓰는 것 같지도 않은 1인 가구에 설거지가 쌓일 일이 뭐가 있는건지 쌓은 나도 이유를 고민 해본 적은 없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고, 생각해보면 내 싱크대엔 두 가지 사연이 있겠다. 첫째는 나에게 죄를 덜 씌우려고 가능하면 끼니를 직접 챙긴다는 이유라지만, 실은 배달 음식 쓰레기가 한무더기씩 쌓여있는 꼴을 보고있자니 눈에 거슬려서 왠만하면 해먹으려고 하는 것. 둘째는 아침에 운동가는 두어시간을 빼면 길게는 20시간, 게으른 12월엔 하루를 넘겨 집에서만 지내기 때문에 남들보단 몇배 정도 번거로운건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 그간 너무 내가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먹고 사는 것을 잠깐 그만두었더니, 다른 먹고 사는 일이 쌓여서, 갑작스레 찾아오고, 떠난 것에 괴롭다가 긴 12월이 어찌 갔는지 알 길이 없다. 그 덕에 오래도록 싱크가 비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반갑지가 않아서 오늘 하루 그릇을 꽤 쌓아두었다. <설거지>
[2]
먹는게 두려워지는 때가 이따금씩 있는데, 지난 일주일은 비싼 값을 치뤘다. 먹으면 체하고, 어지럽기를 반복하더니 삼킨것 없는 체기와 취한 적 없는 숙취로 괴로워했다. 홀로 아픈 것의 설움을 말하는 건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헛구역질은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도, 가족도, 일도 모두 덮고 누른다. 일어서도 보고, 앉아도 보다가 응급실 근처로 향하다 말곤 비스듬히 누워서 머리맡의 새벽 시간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맥아리 없이 지켜보다가 잠들게 해달라고 대상 없는 바램을 떠올리다가 잠든다.
나는 말 그대로 속이 꼬였다. 소화하지 못할 일을 두려워하다가 오늘은 쉽게 해내는 내가 어이없기도, 다시 두려워지기도 한다.
꼬여버린 나는 먹고 자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메니에르>
[3]
설거지를 피하고 핸드크림을 온 집안에 놓고, 달고 살아도 겨울 내내 습진이 가시질 않는다. 어젠 지문이 달라졌나 도어락이 손가락을 거부하더니 급기야 3분을 기다리란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처럼 쭈글하다. 손이 못생겨서 보이길 부끄러워했는데, 아래위로 부끄러워졌다. 핸드크림을 아무리 발라도 부끄러움이, 따가움이 가시질 않는다. 당신에게 보일 일 없는 내 손은 내겐 매일 보인다. 내가 부끄럽다.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