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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컴퓨터 조립에 대한 고찰

[1] 나는 1년에 4~5번 정도 요청을 받아, 데스크탑을 조립 및 세팅하여 주고 있다. 기계를 만지는 재미도 있기 때문에 보통 부품값만 받고 만들어 주는 편이고, 내가 조립을 하지 않아도 구매 상담을 많이 해주고 있는데, 이 때 가장 나를 난감하게 하는 말들이 있다.
Q. 가성비 좋게 맞춰 주세요.
Q. 적당하게 맞춰 주세요.
여기까지는 좋다. 그럼 저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대답인데 질문이네?)
A. 주된 용도가 뭔가요?
A. 게임을 하면 어떤 게임을 하시나요?
[2] 예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화는 여기서 끝난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어느정도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돌리는 사람들은 굳이 나에게 묻지 않는다. 이미 잘 아는 경우도 많고, 컴퓨터 사양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의 성능을 내려면 어느정도 금액(예로 100만원) 이상의 표준 제품을 사면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물론 조언을 해주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나에게 상담을 하는 대부분은 특별히 전문 프로그램을 다루는 건 아니지만 집에 컴퓨터 한 대는 있어야 될 것 같다거나, 아이를 위해 적당한 컴퓨터를 맞추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와 동시에 되도록 저렴한 금액으로 괜찮은 성능을 갖추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 컴퓨터 부품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성능이 변화되어 왔는지, 어느 정도의 금액대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네이버에서 '조립 컴퓨터' 또는 '삼성 컴퓨터'등 컴퓨터 관련 검색을 해보면, 사무용 10만원대부터 전문가용 수백만원까지 다양하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럼 먼저 간단하게 결론부터 정리해 보자.
결론 : 컴퓨터 사양은 돈과 거의 완벽하게 비례한다.
최신 i5/i7/i9 의 CPU 성능 비교 - 고사양으로 갈수록 비싸진다. / 출처 : PASSMARK
[3]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50만원짜리보다 500만원짜리 컴퓨터가 훨씬 좋다. 어떻게 보면 컴퓨터 부품들만큼 가격에 따른 성능 차이가 명확한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체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성능적인 부분만으로 보았을 때, 컴퓨터로 웹서핑과 영화만 보는 사람에겐 50만원짜리 컴퓨터나 500만원짜리나 체감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물론 정말 민감한 사람들에겐 0.05초의 딜레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픽/영상 작업을 주로 하는 사람에게는 CPU 성능에 따라 랜더링(편집본을 최종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 시간이 500만원짜리에서 5분만에 끝나던 것이 50만원짜리에선 1시간이 걸리는 등 극적인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가성비'와 '적당함'을 찾으려면, 용도를 모르고선 판단이 불가능하고 하겠다.
[4] 그래서, 처음 나의 대답과 같이 '주된 용도가 무엇인가' 가 컴퓨터 조립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수백만원을 쓰고 산 컴퓨터가, 수십만원짜리와 체감 성능이 같다면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가장 비교하기가 쉬운 게임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비트코인으로 인해 가격이 고공행진 중인 GPU(Graphic processing unit)가 게임 성능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요즘 조립 컴퓨터 가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내 게임 순위를 조사해보면 아래와 같은데, 유명한 게임들 중 현재 1위인 리그 오브 레전드와 4위인 디아블로2 레절렉션의 권장 사양을 한번 체크해 보자.
11월 중순 PC 게임 순위 / 출처 : 게임메카 뉴스
권장 사양 차이가 엄청나다.
[5] 기본적으로 LOL(리그오브 레전드)은 벌써 출시가 10년이 되었다보니, 게임의 그래픽 권장사양은 최신 CPU의 내장그래픽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정도다.(매년 컴퓨터 부품의 성능 향상은 어마무시하다.) 하지만 최신 게임인 디아블로2는 권장이 GTX1060인데, 최근 절판되기 전까지 약 30만원대를 유지했었으며 중고로 구하더라도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순히 게임만 놓고 보더라도, 어떤 게임을 하냐에 따라 이렇게 컴퓨터 요구 사양이 다르며, 이는 조립 컴퓨터의 금액과 직결된다. 이것이 내가 처음에 '주 용도' 다음으로 '게임의 종류'를 묻는 이유이다.
[6] 이렇듯 컴퓨터를 사는 것도, 일반 가전제품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필요한 성능을 체크하고, 그 성능에 맞추어 금액을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조립 컴퓨터 뿐만 아니라, 유명 노트북이나 컴퓨터 브랜드의 제품을 고를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꼭 나에게 상담을 하지 않더라도, 컴퓨터 도매상가의 매장이나 브랜드 컴퓨터 회사의 양심적인 판매원에게 사용 용도를 이야기하면 무난하게 추천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컴퓨터를 구매할 때는 꼭 '주된 용도'를 먼저 확인하고, 추천을 해주는 제품군의 범위 내에서 가성비를 따져 구매할 수 있도록 하자.
PS. 물론, 비싸고 좋은 걸 사면 모든 조건을 만족하고 안정성도 높으니, 돈 있으면 언제나 비싼게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