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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홈 로스팅(Feat.Sandbox 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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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카페의 끝은 어디인가? 격동의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집밖으로 나오지 못 했던 많은 사람들이 시작한 취미이자 생활이 홈카페이다. 단순한 핸드 드립을 위한 드리퍼 세트를 구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직접 원두를 갈아보겠다고 그라인더를 구매하거나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기도 하면서 점점 영역을 확대해 간다. 대부분의 홈카페를 여는 사람들이 다다르는 마지막 구간은 값비싼 그라인더, 에스프레소 머신, 드리퍼 등을 구매하여 커피맛의 미세한 퀄리티를 높이고 장비욕심을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더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커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원두 로스팅이 되겠다. 나도 어쩌다보니 결국, 진정한 마지막(?)까지 손을 뻗은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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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유명 원두 구매 사이트들에서 원두를 사다보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에티오피아 원두는 중배전, 브라질 원두는 강배전, 파나마 게이샤 원두는 약배전 등 어느정도 정해진 로스팅 포인트가 있다. 그럼 파나마 게이샤 원두는 강배전 로스팅하면 못 마셔? 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 수많은 커피 로스터들이 해당 생두를 가지고 수많은 테스트를 해본 결과, 파나마 게이샤는 약배전이 가장 그 원두의 특색과 맛을 잘 뽑아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원두에 따라, 블랜딩에 따라 또는 각 로스터에 따라 로스팅 방식은 다르지만, 어느 정도 약속된 로스팅 포인트가 있다. 나처럼 홈 로스팅을 도전하는 사람들은 이 약속된 로스팅 포인트에 궁금증을 품고 도전해보는 사람이 되겠다.(또는 원두 구매 비용을 아끼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후회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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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커피 로스팅을 위해 구매한 장비는 '샌드박스'라는 회사에서 만든 'R1' 제품이며, 오늘은 해당 제품을 이용하여 홈 로스팅을 해본 후기이다. 우선, 커피 로스팅을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되는 용어에 대해 설명하고 가겠다.
1. 터닝 포인트 : 예열된 로스터기에 원두를 넣었을 때, 원두가 로스터기의 열을 흡수하며 내부 온도가 일시적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어느정도 흡수가 끝나면 다시 로스터기의 내부온도가 상승하게 된다. 이 상승곡선의 시작점을 터닝 포인트라고 한다.
2. 1차 크랙 : 생두가 어느정도 열을 받아서 볶아(구워)지고 나면, 팝콘이 터지는 것처럼 탁탁탁 소리를 내며 생두가 터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로스팅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며 온도를 낮추거나 내부통의 회전속도를 조절하는 등 로스터의 역량이 요구된다. 보통 1차 크랙 후 1분 내외로 로스팅이 끝나며, 강배전의 경우 2차 크랙까지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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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R1' 제품은, 샌드박스에서 제공하는 어플을 통해 로스터기의 제어가 가능하다. 모든 조건을 수동으로도 컨트롤 할 수 있지만, 나같은 초보 로스터에게는 너무 짐이 무겁기에, 보통은 표준 프로파일을 이용하여 시작을 하게 된다. 표준 프로파일에는 로스팅 포인트(강도)에 따라 가장 무난한 세팅값이 지정되어 있으며, 1차 크랙과 2차 크랙의 포인트에만 버튼을 눌러주면 자동으로 각 단계별 로스팅 설정값으로 넘어간다. 각 나라별 원두에 따른 고급 프로파일과 대회 프로파일도 있는데, 역시나 추가금을 내고 이용하는 VIP 서비스였다.(흑흑 역시 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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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스팅을 시작해보자. 내부의 드럼을 꺼내서 계량된 생두 100그람을 넣어 두고, 드럼이 없는 상태에서 로스터기를 예열한다. 기본 세팅은 170도로  되어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낮다고 180~190도로 설정하여 사용하기에 나도 185도로 놓고 예열을 했다. 예열이 완료되면 폰 어플에서 알람이 뜨는데, 이때 드럼을 넣고 잘 고정한 후 시작 버튼을 누르면 본격적인 로스팅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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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터기 안에 드럼이 돌아가기 시작하며, 185도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가 다시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는 '터닝 포인트'가 나타난다. 그 후에는 시간에 따라 점차적으로 온도가 상승하며, 1차 크랙이 발생할 때 '1차 크랙' 버튼을 눌러주면 표준 프로파일에 세팅된 값에 따라 온도 설정, 드럼 속도, 팬 속도가 조절이 되어 로스팅 정도가 조절이 된다. 표준 프로파일은 2차 크랙까지 지정이 되어 있는데, 1차 크랙 후 약 50초 정도 유지 후 2차 크랙시에는 약 20초정도 유지가 되었고, 로스팅이 완료되었다는 알람과 함께 드럼을 로스터기에서 꺼내어 쿨러통에 넣고 식혔다. 이렇게 쿨러통에서 식힌 후에 잠시 디개싱(공기와 접촉하여 부푼 가스를 빼내는 과정)을 하고 이번 로스팅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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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두 로스팅이 끝나고 나서도, 로스터기의 쿨링을 위해 내부 팬이 계속 돌아가고 폰 어플에서도 내부 온도와 잔여시간이 표시가 된다. 이번의 경우 약 10분정도 쿨링 후에 로스터기가 꺼졌고, 로스팅 후 기계 내부에 남은 잔여물(생두 껍데기와 부스러기 등)을 정리하고 쿨러통에 남은 잔여물도 정리를 해주고 나서야 진정으로 로스팅이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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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홈 로스팅에 소요된 시간은 이것저것 다 고려해서 약 20분 정도였는데, 약 100g의 원두를 볶아서 80g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발생하는 오차이며, 첫 시도치고는 나름 깔끔하지 않았나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다음날 갈아서 마셔보고 다크 로스팅이 너무 심했던 것인지 탄맛밖에 나지 않아 서글퍼한 것은 덤이다. 이와 같이 요즘엔 가정용 로스터기의 품질이 좋아져서 충분히 나같은 아마추어들도 홈 로스팅을 시도해 볼만 해졌다. 단지 생각보다 준비과정과 뒷정리가 귀찮고, 생두를 볶는 냄새가 꿉꿉하니 좋지 않았으며, 역시 전문가가 아닌만큼 고급 생두를 사용했으나 맛이 좋지 않았다. 따라서 진정한 깊은 취미 생활을 원하거나, 끝없는 시도와 실패를 겪어도 마지막 한번의 성공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홈 로스팅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