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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어린 시절 나는 뭔가 잃어버리는데엔 아주 선수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소풍간다고 어머니께서 찬합에 깁밥이나 과일을 이것저것 싸주시면 찬합 뚜껑을 잃어버리고 온다던가, 중학교 시절엔 수련회 간다고 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면 꼭 양말같은 사소한 것 하나쯤은 의도하진 않았으나 어딘가에 나의 흔적을 남겨두고 왔다. 어머니는 '물건 잘 챙겨라' 를 입버릇처럼 달고 나를 키우셨다 한다. 서른 넘어서는 찬합 뚜껑과는 비교할 수 없게 스케일이 커졌다. 예를 들면 식당에 옷을 놓고와서 영영 찾을 수 없게 된다거나, 호주머니에 뒀던 현금을 산책로에 흘리고 온다거나.. 오죽했으면 어머니는 요즘도 '운전 조심하고' 뒤엔 '뭐 잃어버린거 없냐' 라며 걱정해주신다.
[2]
어린 나의 기억에도 잃어버린다는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싸한 느낌으로 기억한다. 손에 쥐고 있는걸 놓는다는 느낌 조차 어린 나에게 '잃어버린다' 라는 개념이었다. 어쩌다 백원 이백원 용돈을 받게 되는 날엔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동네 슈퍼엘 종종 가곤 했는데, 맛있게 먹고나면 포장지와 막대기가 남는다. 어린 손에 꼭 쥐고 있던 포장지를 놓아줄 때에도 해방감 보다는 짧은 상실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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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음에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잘 살고 싶었고 요즘은 그럴 의지도 충분해서 상실감을 잘 제어해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내가 느끼는 상실감이 뭘까 파헤쳐보고싶었다. 최근에 느낀 재미있는(?) 잃음을 소개하고 싶다.
'오늘까지 기한 만료인 스타벅스 쿠폰을 쓰지 못하면 어떡하나' 라는 잃기 전의 상실감(잃음 전)
'아침 산책하면서 먹어야지 하고 들고왔던 크림빵이 사실은 밤빵이었다' 라는 잃은 후의 상실감(잃음 후)
예상 가능한 잃음 전 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잃음 후 는 적어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진 않았다. 아는게 없으니 불안할 것도 없는 평온한 상태. 잃음이 가진 속성은 당연히 부정적이지만, 잃음 후 가 그나마 나아보이고 제어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대게 짧은 상실감이고, 오롯이 내가 칠칠맞지 못해서 생긴 일들이라 내탓을 할 수 있다.
욕망의 스타벅스 1+1 쿠폰.. 실화다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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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센터 선생님으로부터 감정을 막연하게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말씀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전문가 말도 안듣고 지 맘대로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느끼는 감정을 구체화하려고 하고, 이해하고 싶고, 잘 살고싶다.
지금도 칠칠맞지 못한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뭔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잦다. 잃어버리는 것들이 물건보다 중요한 것들이라는게 크게 달라진 점이다. 짧은 잃기엔 익숙하지만, 나이가 점점 길어져서 그런가 요즘엔 긴 잃어버리기가 불쑥불쑥 찾아온다. 긴 잃기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예상한 상실감이던, 예상하지 못한 상실감이던. 내 문제던, 내 문제가 아니던. 그래도 한가지 알게된 건 사라진 것들이 몇초의 순간부터 몇개월, 길게는 몇년까지 이어지는 잃기로 나를 괴롭히진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 4월 9일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