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11월의 기록

[1]
인간 환멸
콧구멍에 찬 바람 들어찰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건 한국 사람이라면 어릴적 학교에서부터 배워서 뇌에 하드코딩된 수준이 아닐까 ? 올 해도 어김없이 반성의 시즌이 돌아왔다. 좋은 일, 싫은 일도 많았고, 여러 의미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나 중심으로,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삽십년 넘게 이기적으로 살아왔지만 .. 뭐랄까 이젠 더 눈치보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살고있다.
이기적으로 바뀌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어 좋았던 반면, 부끄러우면서 싫은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좋게 풀어나갈 수 있는 일도 굳이 스스로를 보호한답시고 수틀리게 만들어버린다던가, 피곤한 인간 관계를 더 이상 이어나가려고 하지 않고, 그 시간에 운동이나 하고 집에 누워서 책을 보던 유튜브를 보던 쉬어버리고 싶으면 그냥 쉬어버린다던가 하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지 멋대로 산다’ 라고 할 만큼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는 반 깡패같은 짓도 서슴지 않는다.
내 멋대로 사는거야 뭐 뒷감당은 내가 하면 되는거니 사실 큰 상관없다. 오히려 편하고 좋은 면이 더 많지 않나? 이것만 아쉬우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여기에 겁도 많아져서 조금만 수틀리게 되면 “일이나 인간이나 나나 다 그렇지 뭐” 하고 빠르게 눈감아버리는 버릇도 생겼다. 쉽게 사람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인간 관계의 기저에 ‘환멸’ 을 깔고 들어간다. 들이받는 나는 어디로 갔나.. 열받고 맘에 들지 않으면 따지고 들고, 이해해야 넘어가던 미친놈은 어디 나고 인간 환멸만 지독하게 남은놈이 12월의 끝자락에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앉아있다.
들이받지 않아서 별 일이 없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없는게 행복이라며 거짓말 하고 겁내고. 그 이야기, 그거 하나가 뭘 바꿀 수 있을지 알면서. 달아도, 써도 삼키고 체한다.
글과는 전혀 상관 없지만, 겨울이 왔으니 대방어 짤. 수영구 우리포차
[2]
리터치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항구도시 특유의 풍경도 좋지만, 내어주는 커피와 베이커리가 만족스러워 주말엔 언제나 관광객이 많다. 매장이 넓고, 테이블간 거리가 먼 듯 가깝다. 로스팅 기계를 등진 자리를 잡고 먹고 마실 것을 주문하고 오니, 이내 40대 초반의 친구사이로 보이는 분들이 옆테이블에 자리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괜히 집중하게 되는 것이 옆테이블 이야기 아닌가? 대학 동창 정도로 보이는 그들은 영도 뷰가, 커피가, 아이들의 영재 교육이 어떻니 자랑 반 걱정 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미용으로 주제를 넘기더니, 송혜교 스타일로 눈썹 문신을 받은 이야기를 하며, 리터치를 재테크라 이야기하더니 서로 깔깔댄다.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 비슷한 무언가를 빌어 이야기하거나, 손짓과 인상을 써가며 설명하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뭔소리야‘ 속으로 생각하면서 웃었지만, 이내 들키지 않으려고 괜히 책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러고선 아들이 영재교육원 시험 준비하는 주제로 옮겨갔다.
속시끄러운 것들을 머릿속에서 잘 정리하고 싶었는데, 눈썹 리터치에 위안을 얻었다. 리터치가 꽤나 길게 잘못 빠져서 레이져로 지지는 중이라 천천히 오래 걸리는 건 아닐까? 그리고 좀 잘못되면 어떤가? 웃기면 그만이지 뭐.
자주 가는 카페에서 그 날 본 풍경. 정박되어있던 배끼리 부딛힌 사고 처음 봄.. 해경도 보고 기름 냄새는 덤
최근 가족여행으로 간 비슬산에서 야간 별 촬영. 요 근래 본 별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2023.12.06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