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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1

[1]
경기도 모처에 있는 회사를 떠나 운 좋게(?) 고향으로 내려와 재택근무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출퇴근 공수를 줄이는 것 이상으로 행복한 일이 많았다. 좋은 사람과 긴 인연을 약속했고, 학교나 직장을 핑계로 자주 연락하거나 보지 못했던 가족과 매일 볼 수 있었으며, 이른 아침에 운동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그렇게나 원하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평범한 삶의 궤적"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팬데믹 전부터 온라인 기반 업무 진행과 소통이 익숙했던 탓에, 개인적인 퍼포먼스, 팀 운영, 프로젝트 운영 측면에서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팀은 규모로나 성향으로나 꽤 성장했고, 스스로도 효율 위주의 업무 사고 방식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필터링 없는 순도 100% 재택근무 현실판 내 책상. 귤을 얼마나 까잡수신건지
[2]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워커홀릭 기질이 있고, 꽤 행복하게 일하고 있어서 문제가 될거라 생각해본 적 없다. 재택 3년차에 가까워지니 일이 생활이 되어버리고, 일터와 쉼터가 섞이다보니 가끔 내가 직장인인가, 일을 취미로 하는 백수인가 하는 요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최근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직장인이고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였다. 종종 낮시간에 마주쳐서 인사할 때의 어색한 시선을 그제서야 이해했다.
가끔 마주치는 출근 문제. 대면근무 시절 매주 올라올 수 있으니 부산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를 꽤 흘렸다. 사람 일 모른다. 이렇게 될 줄 알았겠나.. 막상 원하던 세상이 열리고 보니, SRT만 두시간 반이 걸린다. 가는 동안 일하거나 공부하면 되는거 아냐? 라고 생각했었다. 팔팔하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미친듯 일본, 대만을 들락날락한 결과는 성인병 연습생 수준의 내 몸뚱아리와 갑상선암, 메니에르 증후군, 초기 경추 디스크였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다른건 차치하고 귀찮다. 출퇴근 합쳐서 5분 걸리던 일이 다섯시간 이상 되어버리면 그냥 짜증난다.
사회성이 낮아짐을 느낀다.
물리적으로 출근하던 시절에도 그리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만큼은 했었다. 좋은 분들과의 귀한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대면 사회 활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나는 서울이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이미 멀어져버렸다.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이나 대학 친구들 대부분은 서울/경기권에 있다. 부산엔 참 일할 곳이 없다. 그나마 부산이니까 이정도지..
누가 내 이야기로 짤을 만들어놨네? https://www.digitalmomblog.com/work-from-home-memes/
[3]
편안한 차림을 유지하고 싶지만 출근한다는 느낌, 사회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고싶었다. 머리를 만질 정도로 화상회의에 신경쓰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를 쓰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자존감도 심어주고 싶었다. 출근하는 경험을 사고 싶었다. 그시절처럼 차려입진 않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그날 가장 뿌리고 싶은 향수를 뿌리고 일을 시작한다.
향수 떠돌이 생활의 마지막인 이솝 휘일 + 지금은 단종된 아쿠아디파르마 LEGNI 룸스프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