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2023년 12월 주간 기록물!

[1] 12월 0주차 <감기>
올 해 감기가 참 지독하단다. 사람을 만나길 하나 감기 근처엘 가길 하나 뭘 하질 않는 삶이라, 옆 회사 골프장 회원권으로 박살나는 이야기 듣듯 머릿속에 흘려보냈다. 목 간질간질 할 때 찬바람 그만 맞고 가만히 집에서 요양이나 할 걸.. 잔병치례 없다고 호기롭게 살던 나는 보기좋게 감기에 뒷손 카운터를 맞고 그대로 엎어졌다. 사흘은 정도는 살려주세요 라는 생각으로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고 수액도 맞으면서 멍청함을 반성했다. 나흘째 되던 날, 비로소 미뤄뒀던 눈에 밟히는 집안일을 하나씩 치우고 버렸다.
열 한 달 멍청했을 나의 지독한 23년을 반성하고 치우고, 버릴 시간이 아직 한 달 남았다. 이제 그만 아프고 그만 멍청하자.
[2] 12월 1주차 <회피엔딩>
맞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려 갖은 수를 써보고 있는데, 매번 회피엔딩이다. 꼭 맞춰야하나 싶다. 그냥 서로 해야 할 의무만 하고 그 이상의 관계는 맺고 싶지 않은데. 삼십년 넘도록 스스로도 이해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 한들 나도 할 말은 없다. 나도, 그들도 애초에 내가 제어할 수 없었던게 아닐까? 그러니 비난할 순 없지만 외면할 수 있는 유일한 파훼법인 ‘회피‘ 가 답안은 아닐까?
쌩까고 내 갈길 가야지 하다가도 회피 한 만큼 나도 회피 당하고 있을 생각에 씁쓸하다 못해 텁텁하다. 미워할 용기는 있고, 받을 용기는 없다.
[3] 12월 2주차 <간섭>
작년부터 시작해, 올 들어 더 심해진 이기적인 삶의 방식 덕분인지 때문인지, 남들이 눈을 세모나게 뜨던 말던 신경을 덜 쓰게 되면서, 조금은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을 스스로 사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잔인하게 조져버릴수도 있었다. 남의 시선과 소리를 적당히 걸러듣게 되면, 나의 시선과 소리를 적당히 걸러서 내보내며, 주변에 관심은 가지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아무도 강요하지도 않은 스스로의 책임을 한 장도 넘기고 싶지 않다. 의견이던, 감정이던 크지 않은 파장을 유지하려고 애쓰다보니 생각보다 파도가 꽤 일더라도 때론 무던히 넘기기도 한다. 당연히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시간은 스스로를 조져버리는 시간에 자주 가려져있었다.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착각은 타인의 삶에 간섭하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는 골때리는 결론을 머리에 새겨버렸다. 주체적인 삶은 개뿔.. 스스로 환자가 되려고 작정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독립이 아니라, 고립하고 있는 모습이 꼴사나우면서, 이런식으로 2년을 홀랑 주변에 폐끼쳤다는 생각에 뜨악 했지만, 어떤 작가는 3년이나 이따위로 살았단다.
읽던 책에서 작가 스스로를 트라우마 많은 삶이라 부르며 풀었던 몇가지 상황들이 있었는데, 자연스레 나의 것들과 비교해보게 되더라. 가는 족족 흙밭일땐 강하게 키울려고 이러나본데 강하게 커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적당한 간섭 덕분에 잘 극복해놓곤 이기적인 삶의 방식 운운하는 것 보니 다행히 나도 죽을 정도로 힘든건 아니었나보다. 정신적 고립이 아닌, 정신적 독립의 해는 2024년이라고 달력에 박아버리고, 이젠 나대로 간섭하고, 간섭받고 싶다. 종이날에 베일 것 같은 예민함도 구겨서 무뎌질 정도로 간섭하고 간섭받는 사이가 되고 싶다. 도망가지 않고, 불편한건 상쇄간섭 해버리고, 행복한건 보강간섭 할 수 있다면 더 좋고!
[4] 12월 3주차 <별별일>
4대보험 가입 후 밥벌이를 한 이래 손꼽히게 혼란스러웠고, 안팎으로 맘대로 되는 일이 그닥 없었지만,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적었다. 여전히 나는 진흙밭에서 구르고 있지만, 주어진 행복과 괴로움 만큼만, 더하거나 덜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뎌지기보단 유연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부끄러운 장면들이 꽤 기억나 아쉽긴 하지만, 이정도면 만족한다. 어디서 이야기하는 “회복탄력성” 이 좋아진건지, 아니면 멍청하도록 무뎌진건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어 주변에 속시원히 물어보고 싶지만 별 수 없다. 별 일 많았지만, 연말 되니 세상도, 나도 기분좋게 멍청해져서 마치 별 일 없었던것 처럼 느껴진다. 23년 반성은 마지막 남은 다음주로 제쳐두기로 했는데, 오래도록 풀지 못한 숙제가 잊혀지지 않나 뒷통수 언저리가 저리다. 세상이 단체로 연말 분위기라 다 없는 셈 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5] 12월 25일 <유턴>
주말 마지막 이른 저녁과 늦은 저녁 사이에 언제나처럼 동생을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온다. 애매한 저녁시간의 도시고속도로는 막히는 일이 잘 없다. 돌아오는 길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영도를 가볼까 몇번을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가를 올리기 직전에 크리스마스에 꽉 막힐 것이 뻔한 시내로 유턴해서 사람구경, 차구경, 간판구경 양껏 하고 느즈막히 돌아왔다. 밍숭맹숭한 3초 고민에 3분은 후회했지만, 30분은 즐거웠다. 차분히 신호 기다렸다 가야할 때에 망설임 없이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야지. 3달의 밍숭맹숭함에 3년을 후회하지 않게. 차 돌릴 수 있을 때.
[6] 12월 27일 <온습도계와 싸구려 분무기>
매번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잊고 미루던 온습도기와 성능이 좋지 않은 분무기를 샀다. 그마저도 서점 가는 글에 급히 생각이 나서 다이소로 향했다. 집에서 이파리 수분 보충용으로 쓰던 분무기는 압축자동식이라 추위를 피해 실내로 들인 식물들에게 쐈다간 집 벽이며 바닥이며 남아나질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실내에선 가습기 덕에 내 코는 무사한데, 식물 잎 끝자락이 노랗게 뜨다 못해 갈색 빛으로 갈라지는걸 기여코 보고서야 늦게나마 “아, 식물들.. 건조하구나”를 확인한다. 잎 끝이 말라버리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말단 신경이 괴사한 수준이니 아마 재생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꽤 멋있게 자라난 잎이었는데 아쉽다. 다음으로 미루고 까먹다가 내가 다 조져버렸다. 몇번이나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은 단락 덕분에 생각이 정리된건지, 그 때문에 후회만 는건지 시원하다가 답답하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대로 인용하는 편이 좋겠다. 더 이상 다음은 없다. 늦지 않게 결정하고 그렇게 하시라. 시간에 지지 말자.
”해 버린 일에 대한 후회는 날마다 작아지지만, 하지 않은 일의 후회는 날마다 커진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생의 저녁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은 하지 않은 일이다. 하찮은 일들과 소란한 만남들 때문에 언제까지나 뒤로 미룬 일, 주위의 만류와 일반화의 논리 때문에 포기한 일, 안전한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과 진실을 감춘 일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흥미진진하고 의미로 채워진 영화 같은 삶을 유예시키고 관객석에서만 살아간 것이다. 나의 삶은 내가 최초로 시도하는 삶인데도.“-류시화-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7] 12월 29일 <물온도>
매일 씻을 때 마다 반복하지만, 샤워 물 온도 맞추는건 한번에 성공하는 일이 드물다. 보일러가 내맘대로 빠릿하게 반응하지 않을 때도 있고, 내 컨디션에 따라 다르기도 해서, 매번 읏 차가워 읏 뜨거워를 반복하며 기를 써서 결국엔 온도를 맞추고 느긋하게 씻기 시작한다. 바다나 계곡은 온도조절 안해도 즐겁게 놀면서 기여코 샤워기 온도 맞추는 모습이 묘하다.
[8] 12월 4주차 <편지>
작년, 그리고 재작년도 그랬지만, 올해 역시 일적으로나 개인적인 삶에서도 도움만 받은 것만 같네요. 좋은 변화도, 원하지 않던 변화도 많았고, 인간으로서의 미숙함과 환멸감을 남들에게 받은 것 보다 스스로에게 받은 것들이 배는 많아서, 아 그냥 다 때려치고 고속도로에서 200키로 밟고 어디 날라가버리고 싶다는 미친 생각도 했었는데요, 이런 순간 아마 주변의 좋은 분들이 없었다면 아마 한여름 고속도로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의 달팽이 신세가 되었을겁니다. 장담같은거 하는거 아니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시지만, 이만한 강한 단어가 가장 설명하기에 적절하지 않을까요? 작년처럼 이렇게 누굴 향하는지도 모를 부끄러움 가득하고 뭉퉁하다 못해 뭔지 모를 글로 고백하지만,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재작년, 작년도 힘들었지만 사실 올해가 제일 개같고 힘들었었거든요. 아무리 세상이 절 후려패도 더 강하게 커주겠다고 했었는데 고백하자면 사알짝 아니 많이 지쳤었습니다. 수년간 소모적으로 살던 방식의 후폭풍이 올해는 좀 쌔게 오더라고요. 좋지 않은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실제로 그런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부끄러움만 들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잘 못했습니다. 앞으로 좋은 모습도 보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조심스럽게 회고에 묻어보내고 싶습니다.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항시 같이 어울려주시고 이런저런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는 저를 멀리해주시고, 다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 제가 이해가 안될 때가 많은데요, 정신적으로 미숙한 저를 주변인으로, 친구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도 못하는 동료 믿고 같이 일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는데, 요즘 시상식 보니 알아서 센스있게 별도로 연락을 드리겠다고 멘트하는 연예인들을 보고 내년엔 저런 센스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이렇게 글 뒤에 숨지 않고, 얼굴보고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야기하려고요.
내년에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세요! 저도 저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