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적인 영역에서 만큼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잘 구하지 않는 편이다.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을 굳이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 스스로도 그들의 진심어린 걱정에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다. 정확히는, 그들에게 없던 걱정을 내가 만들어버린 듯한 미안함이 마음의 부담으로 자리잡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겨도 적당히 에둘러 말하거나, 내가 망쳐버렸다고 이야기하곤 다시 들춰내고 싶지 않아 한다. 머리와 마음속 요동이 가만히 진정되어서 결국엔 사라지길 나의 무의식에게 바라고 있다. 따지고 보면 걱정한다는 것도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지, 그들은 그리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다. 뭐 이것도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니까! 여튼, 좋은 소식만 전하고 싶은데 요즘 그러지 못한 스스로가 실망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언제나 불편하다. 최근 2년간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의 고민과 결점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내려놓고,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오래된 친구들과 자주 통화하게 되었다. 항상 가볍게 통화를 시작하지만 무거운 주제로 흘러가가 되고, 서로에게 무관심하지만 언제나 힘내자로 마무리하게 되는 이상한 대화를,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시도 조차 하지 않고, 살갑지 못한 말투로,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자주 이어나간다. 영어 말하기 연습이라는 명분으로 C와는 자주 통화한지 5년 정도 되었지만, 최근 그와의 통화 빈도와 시간이 꽤 늘었다. 13시간의 시차와 서로의 업무 성격 때문인지, 같은 표준시에 있는 G,S,T보다 자주 통화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C가 나의 불안한 자아를 두고볼 수 없음에 자주 통화하게 된 것일수도 있다.
표정 진지해서 킹받네
[2]
최근 몇개월간, [C]에겐 특히 경사가 많았다. 금쪽같은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났고(!), 캐나다에 자가 소유의 집이 생겼으며(!), 집 근처 직장으로 이직에 성공했다!(빨리 캐나다 집소개 글 써라..기대하고 있다.) 돌려말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진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요즘 행복하냐고 질문했고, 행복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깐의 망설임 없이 넌 행복하냐는 질문이 되돌아왔고,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행복하고 어느 부분에선 행복하지 못하다' 라고 나 스스로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대답을 하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러고선 C는 최근 잭애스 를 보며 다양한 감정이 든 이야기, "젊은 시절의 멍청한 짓을 30대가 되어서도, 40대가 되어서도, 50대가 되어서도 이어나가야 한다" 라고 멍청 할당제 를 선언해버리고, 4월 4일에서 6일까지 휴가를 내고 캐나다에 잠시 와서 자기 얼굴 보고 가라는 헛소리를 제안한 뒤 각자의 시간대로 돌아갔다.
잭애스 짤이 왜이렇게 다 쎄냐.. 제일?순한맛으로 들고왔다.
[3]
아주 썩어 문드러질 클리셰같은 주제지만, 나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측정할 수도 없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맞춰서 산다. 그 중 가장 최악인 것은 아무도 나에게 강요한 적 없지만 스스로 쌓고 있는 의무감이다. 20대엔 좋은 성적으로 학교는 졸업해야 하고요(좋은 성적 아님, 근데 졸업은 함), 30대 전엔 취직은 해야하고요(진짜 겨우겨우겨우 함), 결혼은 당연히 해서 아기는 있어야 하고요(안함. 못함.), 나이에 걸맞게 효도도 해야하고요(효놈임),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야하고요(인간관계 좁음, 최근 버크만 검사했는데 '선택 친화적 인간관계'라고 해서 뼈맞음), 사회성도 좋아야 하고요(말해뭐해.. 안좋음), 모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고요...(모났음. 아주 뒤틀려있음)... 막 살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뭐 하나 제대로 지킨 게 없다.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있는게 절반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움만 좀 덜해졌지, 나는 숨 잘 쉬고 잘 먹고, 잘 살아있다.
잘 먹고 있긴 한데.. 잘 사나? 먹는데 우는 것 같고 우는데 잘 먹는거같고 … 
[4]
마음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절단하고, 누군가 정해주지도 않은 "해야 하는 일"에 아까운 시간과 정신을 다 쏟지는 않나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개천에서 용 난 스토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비루하기 짝이 없고 멋대가리도 없고 이기적이고 어금니 꽉 깨물고 살았던 시절이 짧진 않아서, 스스로를 갈아넣어버리는 성공신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렇게 되고 싶고 살고 싶었다, 지금 봐도 멋있는 사람들이고 진심으로 부럽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해야하는 일보단 하고싶은 일에 집중하는 삶이 몇배는 더 부럽다. 감정이 참 신기한게, 해야하는 일을 하고싶은 일로 착각하게 되면 스스로는 쉽게 속일 수 있어도 남은 속이지 못한다. 결국 나도 못챙기고 내 주변도 망처벼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스스로를 속여서 행복한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면, 항상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행복하냐" 라는 말이 어김없이 들리고, 원하지 않는 폐를 끼쳤다. 남은 것도 별로 없지만, 남은 것 보다는 몇배는 잃지 않았을까?
[5]
내가 행복한 것이 나, 그리고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행복함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는 대로 하시라'는 단순한 결론에 다다른다. 대부분 마음가는 일들은 멍청한 일이었다. 가까운 사람들도 단시간에 설득하지 못했고, 꽤 긴 시간이 지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는 척 해주었다. 멍청한 일의 장점은 "내가" 즐겁고, 무용담은 아니지만 남들을 웃길(?) 수 있는 나만의 소재를 몇가지 얻게 된다. 예를 들면, "내가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커피챗 모임을 만들었는데... "라던가 하는 이야기 말이다.
내가 제어하기 어려운 곳에서 얻는 행복도 좋지만,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즐거움을 통해서 나를 돌보는 것도 나에겐 그 못지 않게 중요했다.
[6]
가지고 싶던 의자가 있었는데, 사러가야겠다. 가까운 주변에 이 의자 살거라고 했더니 저거 왜사냐고... 뭐 어떤가! 멍청하다 해도 마음가는 대로 하시라.
2023.03.26 오후에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