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 디제잉, 그리고 디깅

[1]
20대 중반, 하고픈 것 많고 돈 없었던 시절이라 주 7일 공부하고 일하고 놀기를 반복했었다. 대학교 다니던 시절엔 한참 밴드에 빠져있었는데, 돈 벌면 악기사고 술마시고 옷 사는데 다 써버렸다. 합주하고 노래부르고 돈벌어서 술먹고 악기사는 삶이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미도 식었고 멤버들도 하나둘 떠나게 되며 자연스레 밴드 활동은 마음에서 떠났다.
[2]
우연한 기회로 디제잉을 접했다. 당시 조그마한 힙합 클럽부터 시작해서 대형 클럽이 부산에서 막 생겨나던 시기였는데, 아마 대학교 3-4학년 시절로 기억한다. 가끔 마주치는 디제이들이 참 멋있어보였다. 밴드도 좋았지만, 전자음악에도 조금은 관심이 있어서, 이런저런 악기들을 사모으고 연습하기를 반복했다. 당시, 디제잉 장비계의 레퍼런스 회사격인 파이오니아 사의 DDJ-ERGO라는 올인원 컨트롤러(CDJ + MIXER를 따로 조합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기기로 디제잉을 끝낼 수 있는 저가형 장비)가 출시되었다. 요즘은 올인원 장비도 많고, 디제잉 인구가 과거에 비해 늘어났으며, 디제잉 클래스나 한국어로 된 강의 영상도 많지만, 당시엔 꽤나 진입장벽이 있는 직업이고 취미였다. 올인원 저가형이라고 하더라도 100만원 가까이 하는 부담스러운 가격에, 디제잉을 배울 만한 곳은 클럽의 막내 레지던트 디제이로 들어가는 것 말곤 딱히 방도도 없었다. 대학생이 돈이 어딨겠냐. 심지어 시간도 없었고, 레지던트로 들어가서 배울 만큼 여유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열심히 과외비, 학원강사비를 모으기 시작했다. 돈 모으는 동안 유튜브를 통해서 장비 튜토리얼이란 튜토리얼은 거의 다 봤을거다(놀랍게도 10년전에도 유튜브를 열심히 본사람 나야나).
DDJ Ergo로 플레이하는 나. 지금은 사라진 경성대 Almost famous에서.
DDJ Ergo tutorial. 오랜만에 봐도 기억나는걸 보면 열심히 수십번 돌려봤나보다.
[3]
돈 모아서 첫 장비를 손에 넣은 순간이 기억난다. 유튜브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레퍼런스 장비를 꽤 오래 써본 사람처럼 익숙하게 세팅하고 테스트했었다. 20대의 절반 이상을 디제잉에 갖다바치며 개같은 산전수전을 겪게 될거라곤 그 땐 전혀 몰랐다. 그 뒤 한참을 디제잉과 파티에 빠져 살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다니고, 중간중간 주중 심야엔 과외나 학원 강사일로 돈을 벌었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주말에 술도 마시고 악기도 사고, 일요일엔 다시 하루종일 일해서 술값과 파티팀 투자금을 충당했다. 나는 꽤나 디제잉에 진심이었고, 가까운 친구들과 파티팀을 만들어 나의 시간과 정신을 모두 쏟았다. 돌아보면 나의 쉽지않았던 30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x같은 시간이었지만, 반대로 가장 '나의 의지대로' 살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4]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처럼 음악을 잘 트는 디제이에 대한 정의와 논쟁은 끝이 없다. 분위기를 잘 타면서 임기응변에 능해야 하고, 흐름이 끊기지 않아야 하고 ..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그 모든 디제이들이 꼭 해야하는 것이 좋은 음악을 찾는 "디깅(Digging)" 이다. 디제이 스스로 원하는 느낌의 플레이셋을 구성하려면, 흔하지 않는 플레이할 세트를 구성하고, 이를 위해서는 유명한 곡들 뿐만 아니라, 남들은 잘 모르는 숨어있는 곡들을 잘 알고,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 그 옛날 디제이들이 무거운 LP나 CD를 한보따리씩 들고 다녔겠는가? 디제이의 특별함은 수많은 디깅의 결과와 좋은 스킬, 세트 구성에서 나온다. 그 중 디깅한 음악보따리는 가장 큰 자산이자 보기만 해도 배부른 "자식같은" 존재다. 틈날 때마다 밤잠 줄여가며 디깅하고 분석하고 세트를 짜서 저장해두기를 2-3년 반복했다.
이당시엔 사쿤 마스크가 유행이었던가. F4C 파티
[5]
그만큼 나는 디제잉에, 그리고 디깅에 진심이었다. 많이 쏟았고, 내 손으로, 우리의 손으로 바닥에서 시작해서 꽤 이뤄내기도 했다. 처음으로 어른들의 도움 없이 뭔가를 해냈고, 낳아보진 않았지만 자식같은 느낌이랄까. 즐거우면서 묘하게 애틋했다. 클리셰지만, 이런 즐거운?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고, 연구실에 있으며 몇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학교를 아예 관두거나, 학교만 열심히 다니거나 둘 중 하나만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휴학계부터 제출했고, 한두달은 멍하게 운좋게 얻게 된 교육청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가, 결국 '똑바로 열심히 살아서 돈벌자' 라는 부담감을 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6]
마음 잡고 싶으면 다들 머리도 짧게 자르고 그러지 않나. 그 당시 난 이미 빡빡이었어서, 자를 머리가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여태 디깅한 음악들과 세트를 다 날리고, 악기를 모조리 팔았다. 수 년간 열심히 쌓아뒀던 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날리는 것은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감정 없이 했다. 내 관심을 잘라버려야지 하나면 열심히 할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다행히 밥먹고 사는데 큰 문제는 없다. 장비를 팔고 디깅한 곡들을 다 날린 덕인가?
[7]
지난 주, 길러오던 긴 머리를 아주 오랜만에 잘랐고, 친한 동생은 내가 요즘 밝아졌다는 말을 흘렸다. '머리를 자른 탓인가' 생각하고 속으로 혼자 웃었다.
2023년 4월 3일 늦은 저녁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