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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부모가 되어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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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이면 이제 나는 내 가족을 소개할 때, 더이상 2인 가구가 아닌 3인 가구가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책임져야하는 위치에 앉게 되었다. 내 아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없어질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고 묘하고 아쉬움마저 든다. 나의 방에서 티비와 게임기는 퇴출 당했고, 아내가 일 할때 혼자서 영화를 보던 사치는 아이가 데이케어나 학교를 갈 때 까지 미뤄야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사실 제일 크게 느끼는 것은 지출에 관한 부분이다.
[2]
다음달이면 콜롬비아 클래식 4K Volume 3가 출시된다. 4K로 복원할 만한 작품들의 모음집인데, 우리나라 돈으로 약 16만원 정도이다. 그리고 한국 영상 자료원에서 또 좋은 작품들을 복원해낸 블루레이들이 출시 예정이고, 김태용 감독의 만추,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러머 걸 또한 발매를 앞두고 있다. 금전적으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머뭇하게 된다. 이 돈으로 아기 기저귀를 사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기저귀를 사고 영화들도 살 수 있겠지만, 왜인지 쉽게 나의 취미에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누구보다 나를 위한 지출을 즐기면서 35년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본인이다. 가지고 싶은 것들은 어떻게든 가졌고, 거기에는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지출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느낌이다.
[3]
우리 부부는 작년에 유산을 경험했다. 그전까지 나는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아내와 둘이서 죽을때까지 살아도 후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닮은 아이가 궁금하지도 나를 닮은 아이는 더더욱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고, 생겼으니 낳아서 잘 키워야지라고 생각하는 도중에 아이를 잃었다.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기에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아내의 정신적 육체적 회복에 온 힘을 쏟았다. 아내가 조금씩 회복을 할때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유산 에피소드를 보고 나도 모르게 울기 시작하더니, 아내가 놀랄만큼 정말 많이 울었다. 게다가 올해 예능과 주변에서 임신한 부부들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유산을 겪는 부부들도 많이 보인다. 심지어 출산을 얼마 앞두고 유산을 겪는 부부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생명을 잃는 것에 경중이 없겠다만,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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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이를 잃고 다행히도 다시 새생명이 빠르게 우리를 찾아왔고, 이제는 하루 하루가 노심초사하여 잠 못 이룬다. 매일 자다가도 눈을 뜨면 뱃속의 아이가 한 번이라도 움직여주길 바라며 아내의 배에 손을 올리고 움직임을 느끼면 그제서야 잠을 다시 청한다. 아내가 웃으면서 자다가도 아내의 배를 찾고, 그러다 엉덩이를 배처럼 만졌다고했다. 아이를 갖는것만큼이나 지키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나니, 우리 부모님도 나를 가졌을 때 매일 이런 느낌이었을까하는 물음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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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가 태어나면 내 인생의 또 다른 챕터가 시작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마치 훈련소를 퇴소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나는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에 가는 날 느낀 30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힘들 것을 끝냈다는 기쁨을 10초, 그런데 집에 가지 않는다는 이상한 기분 10초, 레토나에서 내리며 이 곳에서 1년 6개월을 지내야한다는 슬픔 10초. 다만 1년 6개월뒤에 제대가 아니고, 끝없는 육아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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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태어나는 이 아이는 우리보다 영어를 잘 할 것이고, 질문이 많아 질 때를 위해 나는 더욱 공부를 해야한다. 우리 부모님들과 소통을 했음하기에 우리말도 곧잘 알아듣고 말할수있으면 좋겠다. 데이케어가 한달에 $2000 이상 하고, 한국처럼 평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캐나다인지라 맹부삼천지교의 마음으로 필요하다면 사립학교로 보낼것이다. 무엇보다 열심히 벌어서 아이가 하고싶어하는 모든 것에 올바른 방향으로 지원을 해주고싶다. 벌써부터 어떻게 아이를 키우지하며 걱정이 많지만, 우린 괜찮을 것이다. 육아의 미로에서 길을 잃을때마다, 잠 못 이루며 건강하기만을 바랐던 마음만을 바라보고 미로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 아이가 올바른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