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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서른다섯 프롤로그

[1]
올해로 서른다섯이 되었다. 반오십이라고 친구들과 장난식으로 이야기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반칠십이다. 시간이 다시금 무섭게 느껴진다. 막무가내였던 20대를 지나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30대를 맞이했고, 그 30대의 반환점에 서있다. 무언가를 돌아볼 여유는 아직 없다. 돌아보기 두려움이 더 큰 것이리라.
시간 참 빠르다.. 시간은 가고 여전히 나라는 사람은 개선이 안된다
[2]
물질적 자유로움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30대엔 다행히 밥값 정도는 하고 있다. 운좋게도 좋은 직장에 들어왔고, 남부러울때는 많지만 그렇다고 많이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로 벌어왔고, 써오고 있다(그만좀 써라 나새끼야..). 당연히도, 20대에 하던 걱정들을 30대엔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시절 나의 큰 걱정들은 대부분 좋은 곳에 취직하고 싶다거나, 안정적으로 4대보험 가입해서 따박따박 세금 내가면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돈벌고 싶다거나.. 하는 물질적인 것들이었으니까. 그 뒤에는 몇가지의 책임감도 함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3]
등 따숩고 배 불러지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다. 20대의 미션을 끝내고선 다른 걱정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30대 내내 별 걱정이 없었다. 유일한 걱정이라고 하면 좋은 동료들로부터 느끼는 자격지심과 자극, 더 영민하고 능청스럽게 대처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가끔의 자책 정도였다(가족, 친구 그리고 나의 건강과 안위는 기본값이니까.. : ). 그렇게 몇년을 지내왔고, “아! 30대의 삶은 다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에 젖어 살았다. 자극과 자책은 다행이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고, “더 일을 잘 해야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4]
이런 걱정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런 줄 알았으니까. “이런 걱정만 하고 사는게 맞나?” 싶었다. 20대는 물질적인 걱정 말곤 다른 걱정이 없었다. 월화수목금토일 가득찬 스케줄로 수업도 듣고, 알바하고, 술먹고, 놀고, 그림그리고, 디제잉하고, 잘 시간 쪼개가며 가장 치열하게 살았지만, 힘들어도 행복했단 말이지, 지금은 돈걱정 덜하는거 말고 나머지는 불안함과 불안정함으로 가득차있다. 이렇게 사는게 맞나?
[5]
스물다섯의 나에게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사건들이 많았다. 그 때 대가리 깨진 덕에 지금 밥벌어먹고 살고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 스물다섯의 나는 치열하게 울었고, 치열하게 웃었고, 치열하게 살았다.
서른다섯의 나에게도 스물다섯 못지 않게 대가리 깨지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서른다섯의 나는 치열하게 울지 않고, 치열하게 웃지 않는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했고, 나를 위해서 양보하고, 나를 위해서 사견은 묻어둔다고 생각했다. 하고싶은 일만 할 순 없고, 하기싫은 일을 해야하는 나이임은 당연하다. 그래도 최소한 “내가 해야할 일” 말고, 내가 사는데 영감을 줄 수 있는, 하고 싶은 일 을 찾지 못하는 나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스물다섯을 계기로 다른 사람이 되었고, 서른 다섯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가 왔다. 지금 이대로 살면 마흔다섯에 똑같이 대가리 깨졌을 때 서른 다섯을 후회하고 싶진 않다. 그만큼 나에게 올해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