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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2024)는 할리우드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lookism)를 섬세하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50세의 피트니스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나이를 이유로 직장에서 밀려나는 과정을 통해, 젊음과 외모에 집착하는 업계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은교(2012)의 대사인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를 떠오르게 하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젊음이 특권이 되고, 나이 듦이 벌처럼 여겨지는 현실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듭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나이 든 여성에게 부여하는 불공정한 잣대를 바디 호러와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서브스턴스(2024)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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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 서사는 엘리자베스의 젊은 버전인 ‘수’를 만들어내는 실험적인 약물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감행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조하며, 여성들이 영원히 젊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현실에서도 미용 시술과 성형수술을 통해 젊음을 되찾으려는 강박이 존재하는데, 영화는 이를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형상화한 것 입니다. 젊은 몸을 가진 수가 더 많은 사회적 기회를 얻는 모습은 여성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실을 반영하며,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이 폄하되고 가치를 잃어가는 사회의 이중잣대가 영화 전반에 걸쳐 강렬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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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신체 공포(body horror) 요소는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을 따르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외모에 대한 집착과 바디 호러의 조합은 그 자체로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엘리자베스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점점 수와 비교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는데, 특히, 거울을 보며 공포에 질리는 장면은 단순한 스릴러적 장치가 아니라, "젊음이 곧 가치"라는 사회적 강박이 만들어낸 공포인 것이죠. 이는 단순히 외모를 가꾸는 문제를 넘어서, 나이 든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소외와 자기 혐오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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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 무어는 단순한 공포 연기를 넘어, 외모지상주의에 맞서 싸우는 한 여성의 복합적인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하며,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젊음을 잃어가며 절망하는 과정은 그녀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거울을 보며 점점 낯설어하는 자신의 모습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젊은 몸을 가진 수가 사회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처절한 내면이 대사 없이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죠. 그녀는 이 역할을 통해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로 손색이 없는 연기를 펼쳤습니다. 아직 경쟁작인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2024)를 감상하지 않았지만, 서브스탠스(2024)에서 보여준 데미 무어의 연기라면 충분히 수상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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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퀘이드가 연기하는 하비라는 캐릭터는 업계의 유독한 남성성과 여성 대상화를 과장되게 보여줍니다. 그는 엘리자베스의 전문적인 피트니스 콘텐츠보다, 성적 매력이 강조된 수의 영상을 선호하며, 여성이 단순히 외적인 요소로 평가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이는 할리우드에서 여성 배우들이 겪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젊고 매력적인 여성은 쉽게 기회를 얻지만, 나이가 들면 점점 역할이 줄어들고, 결국 업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죠. 반면 남성 배우들은 나이가 들어도 주요 배역을 맡으며, 심지어 젊은 여성 배우들과 로맨스 연기를 펼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이러한 트렌드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깊이 뿌리박힌 이중잣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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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2024)는 극단적인 신체 공포와 블랙코미디를 통해 외모지상주의의 부조리함과 해악을 날카롭게 꼬집는 도발적인 영화로 긴 여운을 남깁니다. 엘리자베스가 결국 자신의 본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장면은, 단순한 공포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넘어 사회에 대한 강렬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영화는 "젊음과 미는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대 사회가 외모를 기준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방식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신체 훼손을 포함한 바디 호러 요소가 강렬하지만, 이러한 연출이 불편하지 않다면 한 번쯤 감상해 볼 만한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인상을 찌푸리며 헛헛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씁쓸하면서도 매력적인 영화, 서브스탠스(2024)였습니다.
2025.
0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