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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한국 영화에서 유명한 멜로 영화를 꼽으라면 저는 봄날은 간다(2001)와 이 작품을 고르겠습니다. 두 작품 모두 허진호 감독의 작품들인데요.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의 사랑을 다루지만, 눈물을 쥐어짜내는 연출없이 스며들듯 시작하는 사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8월이면 생각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가 주는 느낌과 그에 대한 제 반응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우노필름.
이 영화는 절제, 미니멀한 연출이 더 큰 울림을 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심지어 마지막 남자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나오기 전 15분은 대사조차 없이 영화가 진행되는데요. 주인공의 병명은 극중에 나오지도 않고,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 조차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질척거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내용에서 중요한 여자 주인공이 쓴 편지는 무슨 내용인지, 남자 주인공의 답장은 무엇이었는지도 관객들은 알 길이 없죠. 만약 영화가 관객들에게 눈물을 요구했다면, 주인공이 구구절절한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만 나와도 성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누구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 감정을 전달하려 않고, 오히려 숨어서 우는 등 마치 영화가 눈물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안타까운 감정, 사랑이 시작되는 설렘은 고스란히 느껴지죠. 허진호 감독의 미니멀한 연출은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회자되며 왜 이 영화가 멜로 영화의 클래식인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노필름.
영화의 제목 처럼 8월과 크리스마스라는 서로 만날 수 없는, 같이 존재할 수 없는 두 이미지들을 담고있듯, 죽음이라는 삶의 끝을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데요. 주인공들의 사랑의 시작을 보면 극적인 순간없이 일상의 순간들의 연속인데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합니다. 한 번 두 번 우연인듯 아닌듯 만남이 시작되고, 만남이 잦아지면서 호감이 생기고, 호감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데이트까지 이어지죠. 두 주인공 사이의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보고있으면, 다분히 일상적이라서 더욱 저 자신을 대입해보게 됩니다. 제가 아내와 처음 만나서 어색하게 인사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호감에 휩싸여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고, 그리고 데이트까지의 시간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만듭니다. 사랑의 시작이라는 풋풋함을 담고 있기에 그리고 그것을 절제해서 그려내기에 이런 대입이 가능해지는 부분입니다.
우노필름.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사진사라는 점도 재밌는 점입니다. 사진을 보며 우리는 사진에 담긴 사람, 풍경, 상황을 1차원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진의 힘은 그 너머에서 오는 감정에 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이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또 사진을 찍던 사람의 마음은 어땠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죠. 풍경 사진을 보면 마치 사진을 찍었을 당시의 기억들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나갔기에 추억이라 부를 수 있고, 그 추억을 담아내는 직업이 사진사인 것이죠. 하지만, 사랑을 간진한 채 삶의 마지막을 맞이한 주인공의 사랑은 추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부분이 여자 주인공에게는 짖굳을지 몰라도, 남자 주인공에게는 그의 나레이션처럼 삶의 끝까지 ‘살아있게’해줘서 고마운 점이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여자 주인공이 본인의 사진을 보며 ‘그땐 그랬지’의 추억으로 남기는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우노필름.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영화일수있고, 누군가에게는 눈물을 쏟게 만드는 등, 보는이의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라서 제가 10년뒤에 이 영화를 본다면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는 설렘 같은 것이 있습니다. 10년 뒤라면 혹시라도 딸아이와 함께 이 영화에 대해 대화를 해 볼 수도 있겠죠. 여러분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 여러분만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경험해 보시길 바라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