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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Edward Yang Estate/CMPC
여러분은 2월이 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나요? 발렌타인 데이의 달달함, 설날의 따듯함, 지나가는 겨울의 아쉬움. 북미에선 2월을 흑인 역사를 기념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2월이 가진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2월만 되면 제가 찾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죽기전에 하루를 투자해서 볼 가치가 있는 영화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입니다.
Sony Pictures Taiwan
Focus Film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대만 영화라고 하면 주걸륜 감독/각본/음악/주연의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이 먼저 떠오를텐데요. 청설(2009)과 나의 소녀시대(2015) 등과 같이 최근의 대만 영화는 중국 시장을 상대로 영화를 제작하거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주를 이룹니다. 헐리우드가 거대 자본이, 한국 영화가 진지/재미 사이의 줄다리기를 감정으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처럼 대만 영화인들도 대만 영화만의 특징을 만들기위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위에 나열한 영화들 이전에 대만 영화를 규정짓기위한 움직임, 그것을 대만 뉴웨이브라고 불렀는데요. 인물의 보통화, 시대문제의 개인화, 롱테이크를 통한 다큐멘터리적 연출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양은 이 대만 뉴웨이브 운동의 중심에 있던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자전적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이 오늘 포스팅의 주제입니다.
Edward Yang Estate/CMPC
영화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무려 3시간 5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 인물들의 행동들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긴 영화만큼 등장인물도 많은데 서로를 별명으로 불리다가 또 어쩔땐 이름으로 불러서 누가 누구를 얘기하는지도 헷갈립니다. 도저히 영화가 눈에 안 담기는 것은 우리가 캐릭터와 스토리를 따라가는 기존의 영화 감상법으로 이 영화를 접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물을 따라가선 영화를 온전히 즐길수 없습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은 대만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해당 사건을 소재로만 삼았지, 사건의 재현을 목적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는 1960년의 대만, 미성년자 소년이 길 한복판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그 시대가 소재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대만이라는 나라가 겪고있던 공기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마치 그 시절의 공기가 밀폐캔에서 빠져나와 저를 그 시절로 에워싸는 그런 영화입니다.
Edward Yang Estate/CMPC
Edward Yang Estate/CMPC
왜 2월이 되면 이 영화가 생각나는지를 설명하려면 2월 28일 사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나고 얼마 안된 시점 장제스를 필두로 한 국민당이 국민당과 공산당 내전으로 인해 중국에서 현재의 대만으로 정부를 옮겨옵니다. 이 과정에서 대만으로 넘어온 사람들을 외성인이라고 불렀고, 그 이전부터 살던 사람들을 본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2.28사건은 1947년 외성인의 국민정부가 본성인 노점 단속의 과잉진압 중에 사상자가 나오면서 분노한 본성인들은 거리로 나왔고, 이에 국부군이 사태 진압을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 본성인/외성인을 가려내 무차별 학살로 이어진 사건입니다. 이때부터 대만은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으로 긴장이 감도는 나라가 됩니다. 양조위 주연, 허우샤오셴 감독의 비정성시(1989)가 직접적으로 이 사건을 다루고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인 1960년의 대만은 국민당 정부의 지속적인 계엄령(1949년부터 1987년까지 이어진)의 영향에 있었죠. 영화에서는 누구도 본성인이나 외성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지만 관객들은 알 수 있습니다. 영화속 누구도 타이페이 도시 한 복판을 지나다니는 탱크를 의식하지 않지만, 관객들은 거기에 폭력이 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데이트하는 배경에 군인들이 사격연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것들이 그저 당연한 듯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Edward Yang Estate/CMPC
제가 두번째 문단에서 이 영화는 에드워드 양의 자전적 영화라고 했습니다. 이 고령가 사건의 범죄자 소년은 에드워드 양과 같은 나이입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양은 영화 속 소년과 같이 상하이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넘어온 본성인입니다. 분명 에드워드 양은 같은 나이의 소년이 어쩌다가 살인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감독 자신이 저 소년의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에 대한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세상이 반으로 나뉘어 폭력으로 물들어버린 세상에서, 아이들은 당연한듯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받아들이고 어른들처럼 어울리는 패거리를 나누어 싸움을 하고 다닙니다. 영화는 마치 부서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절망을 보여주며, 이런 세상에 살아남기위해서 개인에게 선택하라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세상을 부수거나, 자신을 부수거나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말이죠. 손전등의 빛만이 소년에게 빛이 되어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었다면, 소년을 손전등을 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Edward Yang Estate/CMPC
우리나라에도 시대가 영화에 남아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이 대표적이죠. 하길종 감독은 시대가 영화에 검열의 칼질을 한 흔적을 영화에 남겨 놓으면서 시대를 표현했습니다. 반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은 1960년 61년 대만의 공기를 중심으로 주변인물들에게 어떻게 살았는지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마치 그 공포, 두려움, 눈물의 시간을 느낄 수 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대학 합격자 명단을 발표하며 끝이 나지만, 사실은 그 당시 역사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들리며 그들을 잊지말자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저 한 편의 영화가 한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증언하고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담아냈는지 꼭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2022.02.1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