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PHILOCOFFEA (나라시노/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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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스벅의 친절한 파트너들? 혹은 멋지게 라테아트를 그려주는 사람? 기원을 따라가면 바에서 커피를 내려주는 사람을 바리스타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지금에서야 체인점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기계 혹은 기구로 커피를 내려주는 모든 이들을 바리스타라고 하지만 꽤나 의미가 넓어졌다고 할 수 잇겠다. 하지만 일단 자격증이라는게 있긴하다. 국제적으로 인증해주는 자격도 있으며 각 국가에서 인증하는 자격도 있으니 그 자격에 합격한 이들은 인증받은 바리스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자격은 아니지만 각종 커피의 세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은 바리스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평가받는 바리스타 오브 바리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대부분 그 평판을 이용하여 사업을 하거나 각종 커피관련 기구나 용품등의 앰버서더가 되어 로열티를 받는 등 영향력을 떨치는데 오늘 리뷰라는 가게인 PHILOCOFEA를 운영하는 카스야 테츠라는 분도 WORLD BREWERS CUP이라는 세계 대회 챔피언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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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야씨가 커피의 세계에 발을 들인 건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기 4년 전인 2012년으로 꽤 늦은 편이다. 당뇨병을 앓으며 입원해 있을 때 커피에 빠졌다고 한다. 실제로 바리스타로서 전문적으로 일 하기 시작한건 2013년이었고 3년만에 세계 챔피언이 된 것이다. 카스야씨가 우승한 WORLD BREWERS CUP은 에스프레소 머신 같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힘이나 중력만을 사용한 추출로 자웅을 가리는 대회이다. 즉 핸드 드립, 프렌치프레스, 에어로프레스 등의 기구가 사용되며 그 안에서 얼마나 인간의 스킬로 맛있는 커피를 재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그래서 바리스타들도 각자의 메소드는 하나 둘 씩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한 4:6추출법이 이 카스야 바리스타가 고안한 메소드다.). 물론 그가 경영하는 PHILOCOFEA에서는 이 추출법을 활용해서 맛있는 커피를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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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게까지 카페의 경영인인 카스야씨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 이유는 그의 철학이 그가 경영하는 카페와 거기에서 파는 커피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해서다. [커피가 만들어지는 세계를 보다 풍요롭게]라는게 그의 철학인데 그가 병을 앓고 있을때 커피를 접하고 인생이 바뀐 것 처럼, 커피의 생산~소비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유명한 농장의 유명한 품종의 커피뿐 아니라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농장의 원두 생산에 투자하고, 다양한 프로세싱을 시험하여 커피 시장의 다양성을 늘려가려는 시도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데 실제 그의 매장이나 온라인샵에서 다루고 있는 원두를 보아도 일반적인 로스터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느낄수 있다.
카스야 테츠 홈페이지 https://tetsukasuy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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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날 매장에서 마신 커피의 원두는 총 세종류인데, 각각 국가와 농원은
1.Ethiopia Gedeb
2.Ethiopia Tamiru Mini Special
3.Colombia Monteblanco 이다.
1은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고급 원두의 생산지인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지역에서 생산한 원두로, 가공 프로세스도 가장 일반적인 방법중 하나인 워시드 가공을 사용하고 있다. 은은한 산미와 단맛이 조화롭고 뒷맛도 깔끔한 좋은 스페셜티 커피라는 느낌을 주는 커피였다. 그리고 2는 에티오피아의 원두 품평회에서 1위를 한 적이 있는 타미르 농장에서도 극히 소량만 수확한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최고급 원두다. ‘뭐가 그렇게 좋은데?’라는걸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든데 잠시 테이스팅 노트를 보고 가자.
-Super Juicy Grape Soda, Champagne, Nectarine, Intense Sweetness, Long lasting sweet aftertaste, Transparent, Sparkling-
응? 뭐가 이리 다양해? 그리고 커피가 스파클링이라고? 물론 이러한 맛이 전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건 아니다. 테이스팅 노트란 ‘이러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 이므로. 다만 다양한 맛이 어우러지는 복잡함/단맛과 산미의 밸런스/스파클링 같은 산뜻함 등이 확실히 느껴졌다. 네츄럴 가공 특유의 다양한 풍미를 모두 살리는 특성으로 인해 ‘오-! 이게 도대체 뭐야?’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러한 맛. 하지만 확실히 커피라는 장르안에 들어간다라는건 느낄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하지만 엄청 맛있는 커피라는 거. 반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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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은 일단 가공 프로세스가 독특하다. Passionfruit Washed. 무산소 가공(Anaerobic)이라 하는 특수 발효 가공의 일종으로, 이 경우엔 패션프루트나 파인애플 같은 과일의 액상이나 발효를 촉진하는 미생물을 사용하여 산소고 통하지 않는 발효통에서 숙성시켜 독특한 풍미를 첨가한 것이다. 드립하기 전 원두 상태의 향도 상당히 자극적이다. 코를 찌르는 듯 한 발효향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드립 후엔 진짜 패션프루트 혹은 자몽의 즙을 짠 주스를 마시는 듯한 맛이다. 단일 품종의 원두, 스페셜티 급의 좋은 커피를 마시고 ‘주스 같다’라고 느끼는 것 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마 커피 매니아들에게 기호의 판단을 하게 한다면 꽤나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라고 느낀다. 왜냐면 인공적인 조작을 최소화하여 토양과 기후 등의 조건을 최대한 고려하여 맛을 내는게 가치라고 여겨지는 마켓이기도 하기에 시장 자체를 위협하는게 아닌가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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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난 일단 중립 기어를 세게 박아 놓고 시작하겠다. 이 무산소 가공 방식은 음과 양의 양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까 카스야의 경영 철학을 잠시 이야기 했는데, 그도 한정된 조건을 가지고 열심히 생산하는 생산자들은 보답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커피 벨트라는 커피의 작황이 잘 되는 토질이나 기후가 어느정도 한정되어 있듯 비교적 그러한 어드벤티지가 없는 곳에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꽤나 높은게 커피 생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산소 가공 방식이 시장에서 어느정도 인정 받게 된다면? 비교적 자연적인 풍족함이 덜 한 곳에서도 매력있는 커피를 생산할 수 있고 커피의 다양성도 증가할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쓰겠지만) 다만 이러한 가공을 교묘하게 조절하여 특수 가공을 했는데도 자연적인 공정만 거쳤다라고 주장하여 높은 값에 원두를 파는 생산자들도 있기에 아직은 부작용도 꽤나 크다. 카스야는 특수 공정의 원두를 취급하되 정정당당하게 그것을 표기하는 생산자들과 그것을 맛보고 싶은 소비자들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위스키나 와인도 전통적인 숙성을 거치지 않고 간편하고 빠르게 생산하여 일정 품질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과연 이러한 움직임은 보편화 될 것인가 부정되어 사양될 것인가? 아직은 모르겠지만 좀 더 지켜보려 한다. 이번에 방문한 PHILOCOFEA는 맛있는 커피 뿐 만 아니라, 그 이름처럼 커피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인 물음을 제공하며 대화를 해가는 좋은 시도를 하는 카페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