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특정한 날짜나 시기가 되면 챙겨보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지난 번에 적었던 러브레터(1995)는 겨울에, 그리고 8월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등 시즌(?)에 맞춰서 기억에 남는 영화들을 보는데요. 이제 4월이 되고 봄이 되니 또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따듯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영화, 4월 이야기(1998)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팝 파트너스.
이와이 감독의 작품들을 이와이 월드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와이 월드는 두갈래로 나눌수 있습니다. 따듯하고 아련한 감성을 주로 그리는 것이 화이트 이와이계, 그리고 어둡고, 우울감을 그리는 것이 블랙 이와이계라고 합니다. 블랙 이와이에는 릴리슈슈의 모든것(2001)이 대표적이고, 화이트 이와이에는 역시 러브레터(1995)가 대표적이지요. 4월 이야기(1998)는 화이트 이와이계열에 속합니다. 영화가 1시간 남짓으로 상영시간이 짧은데,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 위주의 영화 감상법으로는 이 영화의 매력을 알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제 아내도 영화를 보고는 ‘이게 뭐야?’라고 되물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 누가 뭐라고하든 저에게는 봄날 벚꽃 휘날리는 날이 오면 생각나서 챙겨보게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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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했듯이이 이 영화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영화에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승에서 영화가 끝나버리죠. 시작을 다루는 영화가 사랑이 시작하려고 할 때 끝나는거죠. 영화의 주인공의 이름은 우즈키인데 이는 음력 4월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영화는 실제 4월을 얘기하고 있지만, 동시에 주인공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주인공이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할 때, 또 캠퍼스를 거니는 장면들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바라본 시점쇼트로 촬영이 된 것도 이런 이유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세기말의 마츠 다카코의 모습은 그녀가 등장하는 매 순간이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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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시작의 이미지를 담고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4월은 특별한 의미가 없지만, 일본에서는 새학기가 시작하고 벚꽃이 피는 그런 시작의 설렘이 만개하는 시기입니다. 이와이 감독이 이 영화를 기획했을 때, 아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이미지들이 가지는 감성을 나열해보는 것이 제작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풍경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설렘과 불안감. 모든 생명이 잠에서 깨어나고, 처음으로 만나는 세계를 경험하는 생경함과 불편함.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할지도 모르는 시기의 풋풋함과 두려움. ‘시작’이라는 단어에 담긴 이미지들을 영화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벚꽃길을 지나는 것과 동시에 자전거를 타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도망도 가는 것으로 보여주죠. 또 자신감있게 자기소개를 하지만, 어느 순간 부끄러워지는 그런 순간들도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더욱 와닿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겪었던 그런 모습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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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주인공이 고전영화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고전영화를 보여주는데다가 심지어 시퀀스도 짧은 편이 아닙니다. 고전 영화는 전국 시대의 끝을 꿈꾸는 미츠히데와 혼노지의 변에서 죽었을 터인 노부나가와 싸우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실제 있는 영화도 아니고 본 영화를 위해 따로 제작을 한 대체역사물의 가짜 영화입니다.그럼에도 이 장면을 굳이 넣은 이유는 격변하던 전국시대와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세기말을 동시에 넣음으로써, 다가오는 시대의 불안함을 이야기하고자했던 이와이 감독의 감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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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주는 설렘의 결말은 어떻게 끝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설렘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데요.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날에 생각나는 영화 4월 이야기(1998)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