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년을 무엇을 하며 시작하는지에 굉장히 집착하는 타입입니다. 마치 그것이 올 한해 저의 습관을 결정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예를 들어 1월 1일에는 꼭 씻어야 1년 내내 잘 씻을 것만 같고, 같은 이유로 1월 1일에는 욕도 화도 안 내려고 합니다. 그런 저에게 올해의 ‘첫’ 무언가는 항상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쓰는 포스팅을 고르는데에는 더욱 신중했고, 또 어떤 영화를 감상할지는 더욱 신중했습니다. 그렇게 고른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1953)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나이든 부부가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만나러 가서 생기는 부모 자식 그리고 며느리의 이야기입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위해 쓸 시간이 없고, 오직 과부 며느리만이 노부부의 곁을 함께 합니다.
Criterion Collection.
동경이야기(1953)는 죽기 전에 꼭 봐야하는 영화, 매거진 선정 100대 영화, 영대 최고의 영화하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영화입니다. 이유는 7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죠. 영화에서 보여주는 핵가족의 붕괴는 이렇게 설명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개념입니다. 피로 이어진 자식들보다 피가 섞이지 않았고, 심지어 남편까지 잃은 며느리만이 자식보다 더 가족처럼 보이는 것은 유사가족의 그 시작점처럼 보입니다.
Criterion Collection.
그렇다고 자식들을 욕할 수 있을까요? 영화 말미에 보면, 자식들도 개개인의 사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경계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확장되지 않습니다. 그말인즉, 결혼을 하기 전까지 우리의 역할은 자식의 도리에 머물러 있죠. 하지만, 결혼을 하면 가족의 범위가 확장이 됨과 동시에 가족내에서도 다양한 역할들을 가지게 됩니다. 자식으로서의 삶, 배우자로서의 삶, 부모로서의 삶 등 마치 멀티버스처럼 퍼져나가고 그 어느 역할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Criterion Collection.
대학교 때 교수님께서 올타임 베스트로 이 영화를 고르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영화를 감상하는 포인트가 달라져서 새롭게 보인다는 점이었는데요.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riterion Collection.
장남이자,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인 저는 올해의 시작으로 이 영화를 고르며, 어떤 느낌으로 영화가 다가올지에 대해 걱정 반 설렘 반 이었습니다. 22살의 저에게 영화는 다다미 쇼트를 내세우며 있어보이게 이야기할 수 해주는 영화였고, 27살의 저는 며느리가 미련하더라도 착한 사람으로 남고싶어 하는 것 처럼 보였고, 31살의 저에겐 부모로 부터 상처받은 적이 있는 자식들이 그나마도 노력을 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37살의 저는 조금 더 복잡한 심정으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Criterion Collection.
영화를 보고나서 마치 자신이 변한 것을 실감이라도 하듯 감상이 바뀌는 것이 이 다음 감상을 결심할때의 걱정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진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참으로 오랜만에 이 영화를 봐서 ‘다행이다.’라고 느꼈습니다. 동경이야기(1953)를 보시고 나만의 감상을 찾아보는 것도 올 한해를 멋지게 시작하는 방법일 것같다고 말씀드리며, 올 한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1.
17.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