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er Bros.
바비(2023)는 아내와 제가 오랜만에 예고편을 보고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동시에 갖게 만든 영화입니다. 예고편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패러디하는 장면과 작은 아씨들(2019)의 감독인 그레타 거윅이 연출하고 결혼 이야기(2019)의 노아 바움백이 각본을 쓴다고 하니, 그 기대감은 커져만 갔죠. 그리고 저와 제 아내의 기대는 좋은 방향으로 어긋났는데요. 2023년 최고의 흥행 영화, 바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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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패러디는 올바른 배치였습니다. 바비 이전의 인형은 아기 인형 밖에 없었고, 여자 아이들의 역할은 항상 엄마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비가 등장하면서 여자 아이들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바비와 함께 멋진 친구가 될 수 있고, 원한다면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죠. 적어도 이것이 바비를 만들어 낸 회사 마텔이 추구한 바입니다. 여자아이들의 다양한 간접적인 역할놀이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서 사회적인 진출을 도왔다는 것이 회사의 업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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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로 인형을 통해서 느낀 진짜 여자 아이들의 마음은 회사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바비의 비현실적인 외모를 이상으로 내세운 성상품화, 페미니즘 운동의 퇴보, 바비와는 다른 외모로 인해 자존감 저하까지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바비의 영향이 회사가 원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회사의 임원진들이 모두 남자였던 점도 숨기지 않고 보여줍니다. 본작에 직접 제작에도 참여한 마텔의 자기 반성적인 부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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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몰랐던 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요. 바비가 항상 관심과 지원을 받는 동안 켄은 그냥 켄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켄의 탄생배경이 이미 바비에게 남자친구가 필요해서 였으니, 켄은 바비 옆을 지키는 역할만을 위해 존재해왔죠. 그리고 이런 켄이 현실을 만나며, 마치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바비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어떤한 것도 자신을 위한 진정성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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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는 바비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켄처럼 목표를 상실하더라고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인가 라는 질문이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이 여기있습니다. 이 영화는 결코 여성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고, 자아성찰에 대한 질문은 바비와 켄 모두에게 해당되기때문이죠. 우리는 혼란의 시대를 살고있고, 스스로를 잘 모르기때문에 타인과 부딪히게 됩니다. 이렇게 힘든 시대일수록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것보다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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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 블랙코미디까지 곁들여진 이 재밌게 이상한 영화를 완성시킨 방점은 배우들의 연기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바비 캐릭터는 마고 로비의 다양한 필모그래피에서 할리 퀸과 더불어 그녀를 대표할만한 캐릭터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라이언 고슬링이 너무나도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동시에 맹하면서도 비호감이 캐릭터를 연기해야하지만, 밉지는 않게 만들어야하는 켄 케릭터를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감히 예상컨데, 시상식 시즌이 오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것은 물론 수상까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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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나니 영화관에서 보지 못 한 것이 아쉽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아내와 같이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 영화인데요. 그리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상기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바벤하이머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묵직한 질문을 가볍게 그리고 재밌게 잘 전달해 낸 영화, 바비(2023)였습니다.
Nov. 8th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