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는 커피 중독자로 통한다. 매년 크리스마스엔 직원들이 ‘Coffee is always right’ ‘I don’t drink coffee to wake up. I wake up to drink coffee’ 등이 적힌 텀블러나 머그를 선물한다. 하지만, 카페인을 섭취하기위해 커피를 마시는 입장에서 나는 커피를 음미할 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선물로 핸드드립 커피메이커를 받고, 문득 나도 커피를 음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커피 전문가 [T]에게 토론토에 있는 스페셜티 커피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마자, 해치커피를 알려주었다. 위치를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로스터리가 회사에서 차로 3분거리에 있는것이 아닌가. 좀 더 일찍 물어볼걸 싶었다.
아무리 로스터리가 가까워도 출근길은 항상 바쁘다. 결국 추천을 받은지 3일이 지나서야, 큰 맘을 먹고 집에서 1시간 일찍 나와 해치 커피를 방문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대로 찾아가보니 까페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위치였다. 주변엔 알루미늄 공장, 치기공 도매점, 그리고 배터리 재활용 센터가 있었고. 그사이에 해치의 간판이 보였다.
심플하게 ‘해치’라고 적힌 간판.
마감시간이 4시 반인데, 방문시간이 3시 40분이라 바리스타 분이 다음에 방문하기를 요청했지만, 다음에 아침 일찍 다시 오더라도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하필 영하 27도로 올겨울 가장 추운 날에 왔으니, 따듯한 커피 한 잔이 더욱 간절했다. 제일 최근 [T]가 작성한 코스피어 리뷰에서 게이샤 종류들을 마신 것을 보고, 방문했을 때 게이샤 종류가 있었음했는데 운이 좋게도 게이샤 빌리지가 오늘의 커피에 있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게이샤 빌리지 한 잔과 고티티 게뎁 한 잔을 부탁했다.
같은 에티오피아에서 온 커피콩을로 만든 커피들을 골라보았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매장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유리벽 뒤로 포장기계인지 로스터인지 모르지만 그런 기계들이 보였다. 벽 한켠에 수상한 이력들, 바티스타들의 자격증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옆으로 여기서 로스팅한 커피콩들과 각종 핸드드립 커피메이커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커피가 나왔다.
로스터리 안에 앉아서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차에서 마시기에는 너무 추워서, 어쩔 수 없이 일찍 출근했다. 먼저 고티티 게뎁부터 마시려는데 QR코드가 눈에 들어왔다. 스캔을 해보니 커피콩이 재배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한 모금을 마셨다. 첫 감상은 신기했다. 커피인데, 분명 과일맛이 났다. 평소 산도가 높은 커피들을 안 마시다가 과일의 산미가 혀의 양쪽 가장자리들을 스쳐지나가면서 동시에 목넘기기 직전에는 커피의 쓴맛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입맛을 다시며 음미할 겨를도 없이 한 잔이 끝나버렸다. 아차. 사진을 안 찍었다.
둘이 합해서 $29+tax 그리고 바리스타의 팁까지 들어갔다.
이제 게이샤 빌리지의 차례이다. 마시기 전에 사진부터 찍었다. 혹시 모르니 뚜껑도 열어서 커피의 검은물도 찍어보았다. 그리고 한 모금을 마셨다. 더 강한 신맛이 느껴졌다. 커피맛은 더욱 약하게 느껴졌고,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민트의 화~한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자스민때문인가 싶어 검색까지 해 봤는데, 자스민은 민트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딱총나무 꽃에서 나오는 느낌이려나 생각하며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거의 없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만큼 매우 옅은 커피의 쓴맛에, 직전에 마신 고티티 게뎁보다 더 강한 산미가 이게 커피인지 차인지 더욱 헷갈리게 만들었다. 솔직히, 다음에 다시 도전할 때는 가이드가 필요할 것 같았다. $20를 내고 마셨지만, 그만큼 내가 온전히 가치를 알기엔 난 아직 카페인 드링커인가보다.
손이 정말 못 생겼다. 손만 못 생겼을까.
아내가 뭔가 커피표면의 기름에 대해 얘기한게 생각나서 찍어본 커피.
처음 제대로 경험해 본 스페셜티 커피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좋다 나쁘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그런 경험이었다. 나보다는 그나마 커피에 대해 더 잘 아는 아내와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지 모르지만, 회사를 그만둘 때 까지 아내와 함께 다시 방문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