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영화 감독을 도연, 즉 연기를 지도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는데요. 파워 오브 도그(2021)는 현존하는 최고의 여성 감독인 제인 캠피온의 12년만의 장편 영화로, 올해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부문에 다수의 배우가 후보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입니다. 주로 여성의 시각이 투영된 주제의식과 섬세한 표현으로 유명한 그녀가, 서부를 배경으로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에 이미 제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영화에 대한 제 개인적인 해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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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합니다. 1925년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미국에서 성공한 목장을 운영하는 형 필 과 동생 조지 버뱅크가 있습니다. 조지가 로즈라는 미망인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이어지며, 그녀와 그녀의 아들 피트는 이제 필의 괴롭힘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영화에는 세 명의 남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다른 남성성을 표면적으로 보여줍니다. 필은 패권적 남성성, 조지는 공모적 남성성, 그리고 피트는 종속적 남성성으로 보여지죠. 여기서 감독은 이들을 이런 일반적인 캐릭터로 그리지 않고, 이들의 내면을 전혀 다른 성격으로 채워넣어 연기의 난이도를 확 올려버립니다. 특히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필과 코디 스밋-맥피가 연기한 피트의 연기가 인정받는 부분도 이 내면의 성격과 표면적인 성격을 함께 표현해낸 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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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은 흔한 서부극의 카우보이처럼 마초적이고, 카리스마로 무리를 휘어잡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이 있죠. 그것은 그가 브롱코 헨리로 불렸던 그의 스승을 동경의 감정 그 이상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필을 따르는 무리와 사회가 그에게서 바라는 우두머리라는 역할을 해내기에는 그가 동성을 사랑한다는 것을 널리 밝힐 수 없었죠. 그래서 그는 과거의 추억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현재를 변화시키려는 요소들을 제거하려 합니다. 하지만, 현재를 변화시키는 요소 중 하나 였던 로즈의 아들인 피트에게서 잊었던 감정을 느끼고, 그가 피트의 ‘브롱코 헨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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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피트는 외모부터 걸음걸이 그리고 종이로 꽃을 만드는 행위까지 피트와는 표면적으로 정반대에 서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무표정으로 동물을 해부하고 도구없이 손수 동물의 목을 꺾는등의 모습도 함께 보이며, 엄마인 로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스스로 얘기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필에게서 모멸감과 위협감으로 알콜 중독에 빠졌음을 알았을 때, 계획적으로 차근차근 필을 죽입니다.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엄마의 행복을 지켜낸 피트의 옅은 미소를 끝으로 영화는 그제서야 제목인 ‘The Power of the Dog’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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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은 엔딩에 피트가 성경을 읽는 것에서와 같이 시편 22장 20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라고 씌여있습니다. 여기서 개의 세력은 죽은 고기를 먹는 악의 세력으로 이야기하며, 내 유일한 것은 생명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피트가 성경을 읽으며 영화가 끝나기때문에 개의 세력은 필이었고, 내 유일한 것은 엄마인 로즈라고 볼 수 있겠죠. 필에게 ‘The Power of the Dog’의 의미는 사냥개의 모습을 가진 언덕에서 온 병균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사실과 동시에, 같은 언덕을 사냥개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게 가르쳐 준 사람과의 추억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한 자신 또한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묘사는 직접적이지 않되, 연기파 배우들의 존재감만으로 채우는 긴장감이 가득찬 영화, 파워 오브 도그(2021)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