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1975). Retrieved from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우리의 생각을 아카이브화하는 첫 글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한국 영화의 아카이브화에 대한 노력이 생각납니다. 한국 영상자료원(Korean Film Archive, KoFA)에서 2014년부터 꾸준히 한국 고전영화들을 복원작업 후 물리매체로까지 발매하고 있는데, 바보들의 행진(1975)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1)와 더불어 차세대매체 아카이브화 1순위로 꼽힙니다. 과거 기록물의 자료화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결국 개인의 경험과 주관적인 기억에 따라 저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는 등의 갈등도 일어날 것 입니다. 이 영화가 당시의 크고 작은 논란들을 그리는 방식을 보고있으면, “그려지는 시대의 방관자 혹은 관찰자의 관점이 아닌, 그 시절 그 시대를, 그 때의 사람들이 담은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란 물음에 편집의 예술인 영화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영화다운 답변이 이번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2021년에 46년 전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제 감정과 이 영화의 아카이브화가 왜 중요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바보들의 행진’은 38세에 요절한 故 하길종 감독의 대표작입니다. 이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에서,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등과 함께 최고의 한국영화 1위에 뽑혔습니다. 시대를 그리는 영화는 크게, 영화가 시대와 희미하게 관계를 맺으며 단독으로 존재하는 영화와 그리고 영화 자체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영화,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시대는 영화의 배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후자의 경우는 시대가 지나버리면 그 영화의 존재감도 빛 바래져버리고, ‘그 당시에는 그랬었지’ 라며 사라진 것들을 씁쓸하게 곱씹을 뿐입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바보들의 행진(1975)’은 우리나라가 가졌던 독특한 시대를 유기적으로 담는 것 이상으로 영화에 담았기에 걸작이 되었습니다.
故 하길종 감독은 UCLA 출신으로, 그의 졸업작품은 MGM 영화사가 미국 전역에 4명에게 수여하는 메이어 그랜드 상을 수상할 만큼 졸업 후 미국에서의 입지가 보장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 귀국을 결심합니다. 1970년의 대한민국,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했고 처음으로 1인당 국민총생산 1000 달러를 넘기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으며, 동시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분신하는 사건 등 격동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故 하길종 감독은 한국 영화의 판을 바꾸려 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속에서, 또 사전검열제도 속에서, 새로운 무엇을 시도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이러한 감독의 개인적,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바보들의 행진(1975)’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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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에 나타난 대학생이라는 특권계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에 대학생들은 노동이란 생존을 위한 행위으로부터 자유로웠고, 4.19 정신을 이어받아야 했던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 있었으며, 학업을 끝낸 후 대학 졸업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응당 노릴 수 있는 신분상승의 기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공유하던 문화를 청년문화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청년들의 애국가라고 불리던 ‘고래사냥’을 영화의 메인 테마로 사용하며, 청년들로부터 부여받은 노래의 힘을 그대로 스크린에 표현하려했고,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한 장발 단속장면을 보여주는 등, 그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만약 ‘바보들의 행진’이 청년문화 만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걸작으로 남아있지않았을 것입니다. 현재 복원된 판본의 영화를 보면, 코미디와 로맨스를 넘나드는 등 장르는 불분명하고, 영화가 진행된 지 30분동안 이야기는 진행되지않고 제자리 걸음만 하는 이상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는 두 번의 영화 검열을 거치며 28분 가량 잘려나갔기 때문이며, 시대가 영화에 한 행위를 고스란히 담아두었기 때문입니다. 또, 청년문화의 표면적인 것이 아닌, 그 세대의 분노, 좌절감, 절망과 간절함을 그대로 잘려나간 영화 안에 남겨둔 것이 이 영화가 걸작으로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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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대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는 대학생이라는 특권계급에 대한 영화입니다. 무언가를 관찰한다는 행위는 관찰자의 생각이 피사체에 투영될 것으로 우리는 예상하지만, 故 하길종 감독은 피사체인 대학생을 허세가득한 조롱의 대상으로 보기도 하고, 시대라는 함정에 빠진 연민의 대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병태와 영자는 서로 부끄럼없이 바로 옆칸에서 샤워를 하며, 절교를 선언하는데 그 분위기가 전혀 무겁거나 성적으로 다가오지않습니다. 오히려, 이 장면은 어린아이들이 호숫가에서 발가벗고 뛰어노는 것과 같이 보입니다.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대학생들은 머리에 지식은 쌓여가지만, 몸만 커버린 아이로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감독의 시선입니다. 영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철학과 나와서 날 어떻게 먹여살릴래?’라고 핀잔만 듣는 병태는 근대화에서 필요없는 존재로 비춰집니다. 그는 마치 1970년대에 칠판에서 맥없이 지워지는 ‘이상국가’라는 단어와 같은 느낌입니다. 그는 그 이상국가를 사구가로 그리고 회색인을 뜻하는 사구라로 바꿉니다. 이 장면은 본편에서는 학교대항 응원으로 바뀌었지만, 원래는 학생운동으로 모든 학생이 빠져나간뒤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병태가 칠판을 지우는 장면으로 연결되기에 더욱 그 깊이가 아프게 다가옵니다.
병태의 친구인 영철은 말더듬이입니다. 그는 본인의 생각을 입밖으로 이야기하려하면 더 말을 더듬습니다. 그가 말을 더듬지 않을 때는 술기운으로 자기 이성을 잃을 때가 유일합니다. 그는 술로 자기자신을 지워야만, 고래를 찾으러 동해를 갈거라는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주변의 모두가 동해에는 고래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어떻게해야 동해바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고래를 잡을 수 있는지 알지만, 또한 입 밖으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감독의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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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본인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항상 바보들이 행진하는 것처럼 제자리에만 머물던 병태가 입영열차를 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는 군입대 신체 검사로 시작해 입영 열차로 끝납니다. 한국에서 군대는 남자들에게 특별한 시간적 기준선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군대를 갔다오면 어른이 된다라는 식의 인생에서의 기준선입니다. 군대를 갔다오면 복학생 신분으로 대학에 돌아오게되고, 같이 어울리던 이성 친구들은 직장인이 되거나, 결혼을 했을 것이고, 복학하고 얼마 되지않아 곧바로 노동계급이 될 채비를 해야하며, 그 말은 곧, 꿈이라도 공짜로 꿀 수 있었던 청춘들만의 특권, 그 것과의 작별을 뜻합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은 당시 청년들의 의지와 판단 그리고 윤리에 대한 고찰을 처음으로 영화에서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속에서 시대에게 잘려나간 신체를 부끄럽지않게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편집이 엉망이 된 영상들이 보여주는 이상함을 현재에 보고있으면 그 시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고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당시의 대학생들은 시대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고, 사용하지도 않을 배드민턴 채를 장신구로 들고 다니는 허세로 가득차있었지만, 행동하기엔 목숨을 잃을까 두려운, 그런 시대가 던진 삶에 충실하지 못 했었습니다. 시대를 그대로 담아내기위해 잘려진 슬픔을 간직한 그 당시의 실험적인 영화 ‘바보들의 행진’은 어느덧 개봉한지 46년이 지났습니다.
대학생활을 길게한 저는 남들보다 자유로움을 더 만끽했고, 친구들과 무용담을 늘어놓을 만큼 열심히 놀았으며,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 여자친구로부터 용돈도 받으며 즐김에 있어 금전적으로도 자유로웠으니, 근면설싱히 사회의 일꾼이 됨에 여한이 없어야 마땅할 위치입니다. 이제는 오빠와 아저씨의 그 중간에서 다른 한 쪽이 점점 익숙해져가고, 광고와 소비문화의 타겟이 되는 세대가 되고, 또 사회에 자리를 잡았지만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고, 시스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마음껏 꿈만 꾸고 싶은 병태 같은 저를 봅니다. 하지만, '그것이 뭐가 나빠' '다들 그래'라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지들이 있기에 이 아저씨 마음이 든든합니다. 바보들의 행진이었습니다.
2021.11.17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