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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glen. 푸글렌? 딱 봐도 영어는 아닌거 같다. 노르웨어로 새를 뜻 하는 말이다(현지 발음으로는 풀른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표기상 푸글렌으로 통일). 로고에 있는 역동적인 새는 제비갈매기라고 한다. 이 새는 철새라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살아가는데 철새 중에 최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글렌이란 명명의 유래는 제비갈매기가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그 땅의 좋은 점 들을 흡수하여 또 다른 곳에서 그 좋은 점을 퍼뜨릴 수 있는 가게가 되고 싶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노르웨이어로 지어진 이유는 이 카페의 기원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이기 때문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노르웨이는 엄청난 커피 강국이다(옆나라 덴마크도 유명하다). 2000년에 열렸던 세계 최초의 World Barista Championship에서 우승한 Robert Thoresen은 물론, 바리스타들의 바리스타이자 같은 대회의 2004년 챔피언인 Tim Wendelboe도 노르웨이 출신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수준 높은 바리스타들이 있으며, 1인당 커피 소비량도 글로벌 1~2위를 다툴 수준이라 커피와 카페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하네기 공원점에서 촬영. 책자의 사진은 시부야점의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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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커피의 도시에서 1963년에 태어난 푸글렌도 현지에서 손 꼽히는 카페이다. 다른 여러 카페와 비교 했을 때 특징을 두가지 들자면 다양한 종류의 에스프레소 음료와 늦은 시간에는 칵테일 바로서 영업하는 영업 방식일 것이다. 아 미안하다 하나 더 있다. IKEA로 대표되는 따뜻함과 빈티지 감성이 어우러진 북유럽 인테리어를 모든 매장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오슬로에서 사랑받던 푸글렌은 제비갈메기 처럼 먼 거리를 날아서 2012년 기념비적인 첫 해외 점포를 도쿄 시부야에 오픈하였다(여러분이 아는 시끌벅적한 시부야에 위치한 것은 아니고 조금 외곽의 주택가에 있다). 그리고 2014년엔 일본에서도 로스팅이 가능하도록 로스터를 가나가와현에 지었고 2018년엔 제일 일본스러운 장소인 아사쿠사에 새 점포를 세웠다. 그리고 제일 최근엔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인 하네기 공원 근처에도 새롭게 생겨서 총 4곳의 카페 및 로스터를 가진 나름 규모 있는 카페 체인이 되겠다(뉴욕에도 있다는데 홈페이지엔 안나온다).
Fuglen Tokyo(시부야)의 인테리어. 출처:Fuglen Coffee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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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글렌은 제공하는 커피의 스타일도 특징적이다. 배전 정도의 분류 중에 Nordic Roasting이라는 용어가 존재 하는데 그 어느 카페보다 이 배전도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커피를 제공한다. Nordic Roasting은 초약배전, 즉 열을 가하는 시간과 강도를 줄여 생두의 본연의 풍미에 가장 가까운 상태의 로스팅 방법으로, 이 상태의 원두로 내린 커피는 배전 과정에서 생기는 탄 맛이나 쓴 맛이 없고 향과 산미가 강하다. 스벅이나 프렌차이즈의 아메리카노나 드립 커피에 익숙한 분들이 드시면 아마 깜짝 놀랄 맛이다. 커피는 과일이다 라는 당연하지만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을 그 어느 가게보다 확실하게 실감 할 수 있다.
품종개량과 농장에 따른 차별화된 재배 관리의 발달로 인해 2022년 현재 나라명 만으로 커피 맛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된 커피가 쓴 맛이 강조되는 묵직한 맛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통념에 가깝다. 하지만 Nordic Roasting을 한 원두로 내린 커피는 이러한 상식도 초월한다. 브라질산 원두로 내린 커피에서 잘 익은 오렌지와 같은 산미와 단 맛이 느껴지는 것이다. 약배전 커피를 싫어하는 분들 중에서는 초약배전이라면 떫은 맛과 혀를 찌르는 신 맛이 느껴질거 같다고 이레 겁을 먹기도 하겠지만 푸글렌의 로스팅은 그렇지 않다. 아마 수 많은 Try & Error를 통해 최상의 맛을 내며 Nordic Roasting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는 것이 가능하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아직 산미가 거의 없는 커피만 드시던 분 들 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어서, 조금 더 나은 커피 체험을 위해서라도 먼저 약한 산미가 있는 커피를 접해본 후 Nordic Roasting에 도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러한 품질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제공하는 커피는 모두 블렌딩하지 않은 싱글 오리진이며 생산자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생산 농장 이름=커피 메뉴 이름으로 나타내고 있다.
아사쿠사에서 마신 새콤달콤한 라레사. 역시 농장의 이름이다.
역시 아사쿠사점에서. 보기도 좋고 맛난 와플 같은 디저트 메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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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의 유명 로스터 중에도 차별화 된 발효 과정과 가향을 통한 특이한 맛의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늘고있다. 물론 커피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기존의 덜 인공적인 방식, 즉 원두라는 소재 자체를 중요시 여기며 변화를 주는 프로세스 중 하나인 로스팅에서 이 정도까지 특별함을 느끼게 해 주는 카페는 몇 없다고 장담한다.
아직 국경을 넘어 여행을 하기에는 제한사항이 많은 시기다. 이러한 시기에 아늑한 북유럽 인테리어에 둘러싸여 상큼달콤한 과즙같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여유를 누릴수 있는 푸글렌의 존재는 도시의 오아시스 처럼 느껴졌다. 아직 일본의 네 점포 중에 두 곳(아사쿠사와 하네기 공원점) 밖에 방문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시부야의 카페에서 칵테일도 마셔보고 가나가와의 로스터에서 배전 과정도 견학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오슬로의 푸글렌에서도 한 잔의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하네기 공원점의 내부. 북유럽스러움을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