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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체스키 크롬로프(체코)/2편

[1]
소화를 시키며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난간에서 고개를 돌렸을때다. 아마 이 때가 여행중 제일 꿈 같았던 시간 이었던거 같다. 아무렇지 않게 눈 앞에 있는 문을 열었을때 사진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는게 현실감이 있을까? 1분 이상 아무 말도 없이 멈춰서서 문 밖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이세계물이 판치는 애니메이션이나 AR 혹은 VR보다도 현실감이 없었지만, 현실이었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았을때 벅차오르는 감동이란. 사진으로 보았을때 떠오르는 이러한 추억이 하나 있다면, 살다가 기분이 다운될때 곱씹으며 ‘아름다운 세상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이 사진이 그런 느낌을 주는 최고의 한 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그리고 현실로 돌아왔을때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감각은 허기가 진다는거였다. 아니 지금까지 경치에 대한 휘황찬란한 묘사는 뭐였니?! 라고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본능은 거스를 수 없고 오감으로 느껴야 여행이다. 내게 미각이 살아있는한 여행처에서 맛 보는 요리는 결고 아름다운 경관에 뒤쳐지지 않는다. 우열을 가리기 보다는 오감 하나하나가 코스 요리의 메뉴라고 보면 되겠다. 여행 가이드를 참고는 하되 나머진 당신의 감에 맡겨 보라. 그리고 현지인에게도 물어보라. 그렇게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숙소의 컨시어지에서 추천해 준 현지인들이 좋아한다는 경식당인 Na Louzi에서 첫 날 마지막 식사를 청했다. 왁자지껄한 펍같은 느낌. 종업원은 여행자인가? 하는 시선을 보내오지만 그리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다. 그리고 미리 정해놓았던 메뉴인 치즈 프라이(저 쭉쭉 늘어나는 탄력을 보라)와 화이트 와인을 시켰다. 투박하지만 입에 넣자 마자 풍부한 고소함이 퍼졌고 같이 온 감자나 나른 채소와 궁합도 좋았다. 완벽한 하루였다라고 자부할 수 있는 체코 여행의 중반이 끝나가고 있었다.
[3]
숙소로 돌아와서 아늑함에 감탄하며 ‘이 운치있는 숙소에 혼자 묵고 있다니’라는 한탄을 하는 것도 잠시, 샤워를 하고 바로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 시차따위는 이미 극복된 듯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9시에는 오스트리아 짤즈부르크 행 버스를 타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이 경치를 한 번 더 뇌리 깊숙이 새기고 싶었다. 조깅용 복장으로 갈아 입고 짐을 정리해 좋은 뒤 숙소를 나가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찰나이기에 더 아름다웠을 수도 있고 계속 이 곳에서 살아간다면 인프라가 없는 불편함도 느끼겠지만 역시 하루만에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쉬웠다. 물론 나름 방방곡곡 돌아다녔고 사진으로도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현실감이 없어 지나가는 풍경이 더 아름다웠고 더 덧없었다. 언젠가 또 오겠노라 다짐하며 1시간 가량 마을 전체를 둘러본 뒤 숙소로 돌아왔다.
[4]
세계 유수의 여행지가 어디냐고 물었을 때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라는 대답을 듣는 건 쉽지 않을거다. 그러기에 오히려 나는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다. 최고라고. 아직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여태껏 가 봤던 여행지 중에 지금 당장 텔레포트 시켜준다면 어디로 갈래? 라는 질문을 누가 던진다면 망설임 없이 이 곳, 체스키 크롬로프를 택하겠다. 짐을 챙겨 숙소 직원분들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을때, 벽에 귀여운 낙서가 있는 걸 발견했다. 중절모를 쓴 익살스러운 이 2등신 캐릭터가 별 의미는 없을지만, ‘또 올거니?’라고 말을걸며 이 곳에서의 마지막을 배웅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태어나서 10000일을 넘게 살아왔으니 통계적으로는 1/10000의 시간을 보낸 것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분모가 20000 혹은 30000이 되어도 옅어지지 않을 추억을 선사해 준 여행이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