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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현재 내 최애 로스터리&카페이자 거의 매일 출석 도장을 찍고 있는 Sniite(스니트)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한다. 카페가 위치한 곳은 역에서도 상당히 멀고 차도도 2차선 밖에 안되는 평범한 주택가이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여기가 뭐하는 가게야?’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눈에 띄는 간판이나 카페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도 없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커피오타쿠인 T가 인정하는 맛있는 커피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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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의 오너, 칸베 와타루씨의 경력은 꽤 흥미롭다. 원래 주방기기를 취급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어떤 이벤트를 통해 예전에 글로도 썼던 Onibus Coffee의 오너인 사카타씨랑 알게 되었고, 사카타씨가 새로운 형태의 커피 스탠드를 전개하려고 할 참에 칸베씨에게 그 곳의 초대 매니저를 부탁한 것으로 커피 업계의 경력이 시작 되었다고 한다.
이 곳, ABOUT LIFE COFFEE BREWERS는 시부야에서 커피 컬쳐를 전파하는데 기여도가 높은 카페이다. Onibus의 원두는 물론 라인업을 바꿔가며 다른 유명 카페의 원두를 취급하고, 호주나 독일의 유명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의 바리스타들이 방문하여 게스트 바리스타로 등장하며 커피를 대접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커피애호가들이 모여드는 만남의 광장이기도하다. 칸베씨는 이 곳에서 5년동안 일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커피의 방향성을 더 명확하게 전파하기 위해 독립하여 Sniite를 오픈했다.
가게 앞에서 찍은 칸베상과 스태프 겐짱의 사진, 출처 : Onibus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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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iite에서 중요시하는 커피의 철학은 뚜렷한 산미와 깔끔한 클린컵을 가진 원두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내는 로스팅과 브루잉이다. 그러기에 워시드 가공을 거쳐 원두 자체의 산미가 비교적 명확하고 로스팅 포인트가 낮은 원두를 주로 취급하고 있다. 산미가 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데일리로도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커피이다.
이러한 커피의 방향성은 가게의 이름인 Sniite데서도 알 수 있는데 뭔 뜻인가 싶은 이 알파벳 조합은 칸베씨가 여행지인 밴쿠버에서 보았던 풍경에 기인한다. 아시아에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캐나다에는 약물중독자들이 갱생을 시도하며 안전하게 약을 투여할 수 있는 공공 시설이 있다고 한다. 그 시설을 보고 인상깊어하던 그의 눈에 띈 시설의 간판에는 [Injection Site]라는 표기가 있었고, 사람들이 커피를 통해 위로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다는 취지로, 위 단어를 재조합하여 만든 단어가 [Sniite]라고 한다. 필자인 T도 이 개성있는 상냥한 커피에 몇 번이나 최악의 하루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기에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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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오픈 후 2년도 안되어 근처 주택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론 단골 커피애호가들도 보유한 추천 카페지만, 실은 내가 처음 이 곳을 알고 방문하기 까지에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첫째는 물론 역에서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다는 것.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보다 더 높은 허들이 되었던 건 구글맵에서 본 입소문 이었다. 커피는 맛있는데 오너가 불친절하다(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화를 내며 제지당했다)는 평을 두 세건 정도 보았다. 그 때 아직 만나본 적도 없는 칸베씨에 대한 공포감이 존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하여 칸베씨랑 이야기를 나눠도 보고 이 공간을 통해 추구하고 싶은 것이나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위의 걱정은 기우였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언틋보면 독특하여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공간이지만 칸베씨는 이 공간에서 생기는 소통과 커피의 맛 자체를 즐겨주길 바라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히 강하다. 그리고 그러한 커피 체험을 더욱더 발전시키기 위해 로스팅과 브루잉에 대해서도 타협하지 않고 매일 Try&Error를 반복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서는 까다롭다 하지만(실제로 주의를 주는 칸베씨를 본 적은 없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올 수도 있고 아기들이 맨발로 소파 위에 올라가 노는것에 대해서도 용인하고 있다.
그리고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이 공간을 이용해 유명한 디자이너나 영화인 등과 함께하는 콜라보 이벤트도 개최하고 있으며 커피를 마시며 시각적/청각적 체험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즉 본래의 오감을 최대한 집중하여 즐길 수 있는 체험을 중시하는 칸베씨의 고집이 멋지게 담겨있다.
독특한 소파가 가게의 중간에 있는데 인별 인싸들이 이걸 찍으로 모여드는데 고역이었다고,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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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오너인 칸베씨 뿐 아니라 또 다른 스태프인 겐짱과도 커피에 대한 깊은 이야기나 농담 따먹기도 할 정도로 친해졌고, 서로의 커피 취향도 알게 되어 다른 로스터리의 원두를 추천해 주거나 선물로 주고 받고도 할 정도로 정이 들었다.
물론 아무리 관계성의 좋다 해도 맛에 대한 타협은 하지 않기에 항상 맛있는 커피가 있다는 기대감이 없다면 방문하지 않겠지만 매번 매번 기대가 충족되고 가끔은 기대를 넘어서는 커피 체험을 하게 된다.
흔히들 말하는 커피에 정답이 없다라는 말은 반은 틀렸고 반은 맞다고 생각한다. 좋은 원두가 있고 그 좋은 원두의 성분을 최대한 끌어내는 로스팅과 브루잉의 메소드가 존재 할 수 있지만, 사람의 입맛은 다르고 오감 중 미각 이외의 감각으로 커피를 즐길 때는 더욱 더 복잡한 가치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카페의 철학이 명확 할 때 우리는 그 장소에 확 끌리기도 하고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이러한 철학이 유지되는 한 내가 사는 장소가 바뀌고 삶의 가치관이 일부 달라져도 Sniite는 항상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커피도 공간도.
확실히 사진이 잘 찍힌다. 칸베씨는 안 볼 때 몰래 찍었지만 알고도 단골이라 아무 말 안한걸지도. 직접 촬영
+23/8/4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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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몇 달 전 도쿄에 출장 갔을때도 들렀었는데 칸베씨에게 7~8월에 서울에서 팝업을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확정 된 이야기도 아니었고 진전이 있으면 공지나 DM으로 알려주리라 철썩같이 믿었던 것인지 정신이 없었던 것인지 잊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Sniite가 서울에 뜬단다! 그리고 팝업 장소도 집에서 가까웠다. 당연히 가지 않는다 라는 선택지는 없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다음날 도쿄에서 열린 친구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팝업 당일날 일본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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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지 않았냐고? 아니.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을 선택했냐고? 둘 다! 원래 인천공항에서 갈 예정 이었지만 김포공항에서 저녁시간대 항공편으로 예매를 하고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팝업 장소인 한남동 Big Lights로 향했다. 언제 또 있을지 모를 한국에서 Sniite의 커피를 마실 기회와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을 둘 다 놓칠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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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빨리 갔던 것도 있지만 내가 첫 손님이었다. 같이 온 바리스타 겐짱이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칸베상은 안쪽에서 점원분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겐짱이 ‘상짱(T의 일본 별명) 왔어요!!’라고 바로 불러줘서 재회의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왜 한국에서 팝업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가게의 오너 셰프(일본 출신)와 가까운 사이인데 그 분이 팝업을 먼저 제안해 주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얼마나 사람이 올지는 예상이 안됐지만, 해외에 친구도 많고 여행도 좋아하는 칸베상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고 서울도 와보고 싶어서 흔쾌히 수락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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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올린 글에서도 말했듯 뚜렷한 산미와 깔끔한 클린컵을 가진 원두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내는 로스팅과 브루잉이 Sniite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특수가공이 되어 발효취가 나는 커피는 취급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특별히 가져온 커피 중에 특수가공을 주로 하는 농장으로 유명한 콜롬비아 엘파라이소 농장의 커피가 있어서 놀랐다.
칸베상이 Sniite의 정체성을 쉽게 바꿀리가 없었다. 그렇다는건 로스팅과 브루잉으로 특수가공 특유의 인위적인 아로마를 배제하고 좋은 맛만 추출했다는 건데 너무 기대가 되었다.
(좌)Sniite오너 칸베상, (우)바리스타 겐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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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무엇하나. 내 최애 로스터리는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특수가공으로 인해 발현된 단맛은 최대한 살리고 클린함도 가져가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는 거짓말처럼 존재하지 않았다. 실은 다른 카페에서도 마셔본 적이 있는 커피이고 그 때의 기억은 결코 긍정적이지 못했다. 맛있는 커피는 좋은 생두에서 오지만 그것을 조리하는 로스터와 바리스타의 기술과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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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행기 시간이 다가와서 작별을 고했다. 에어콘이 너무 세서 바깥 바람을 쐬려고 함께 나온 칸베상(츤데레)은 실은 손님이 나 한 명만 오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내가 나가기 전 가게의 좌석은 가득 차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커피는 단순한 농산물의 가공품 혹은 잠을 깨워주는 카페인 보충제가 아니라 인생을 채워주는 신비한 요소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아니 확신하고 있다. 칸베상이나 겐짱이나 나나 커피에 매료되어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가 커피를 업으로 삼게 되었기 때문이다.
힘들거나 감이 잡히지 않을때 돌아갈 수 있는 원점. 그리고 그 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편안한 커피. Sniite와 칸베상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 뿐이다.
23.08.04 - Sni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