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을 하는 순간은 아마도 집을 사는 순간일 것입니다. 은행과 25년, 30년을 묶여 수입의 대부분을 대출금으로 갚아나아가는 것은, 노동의 강제성을 요구하는 일이죠. 올해에 집을 사려고하는 저에게 요즘들어 생각나는 영화가 바로 노매드랜드(2020)입니다. 자의 혹은 타의로 유목민의 삶을 택한 사람들을 그린 이야기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Searchlight Pictures.
주인공은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하우스가 있습니다. 다만 그 집이 이제는 어떤한 물질적 가치도 지니지 않게된 것이죠. 한 회사와 의존적인 관계로 시작된 도시는 망할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회사가 망함에따라 도시도 함께 지도에서 조차 사라져버립니다. 남편이 죽고 난뒤, 그녀는 자동차를 구입해 실을 수 있는 물건만 가지고 유목민의 삶을 시작하고, 유목민의 생활에서 친구와의 추억도 생기고 노하우도 생기게 됩니다. 자동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언니의 집과 친구 데이브의 집에 방문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지내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지만 그녀는 몸이 편할지언정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자동차로 돌아가죠.
Searchlight Pictures.
영화는 2017년에 출간된 동명의 르포르타주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유목민이 된 사람들을 다루고있는데요. 영화에서는 US 석고 공장이 부도로 폐쇄함에 따라 우편번호마저 없어지고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네바다 주의 엠파이어시를 떠난 가상인물 ‘펀’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가상의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주변인물들은 실제 유목민들을 섭외하고 그들의 삶을 담는 등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을 하고있는데요.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낭만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되 일용직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며, 인물들에게의 따듯한 시선은 지키고 시스템에의 차가운 시선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Searchlight Pictures.
영화에서는 하우스리스와 홈리스를 확실하게 구분짓고자합니다. 주인공으로 대변되는 유목민들은 하우스가 없을뿐, 어디든 주차만 하면 집(Home)이 되는 차가 있습니다. 하우스와 홈이라는 어감의 차이를 짚으며 자오 감독은 본인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집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튼튼한 벽과 지붕 안의 물리적인 공간을 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 공간이 넓으면 부의 상징이자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기도합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의 키를 기록한 벽 한켠, 부인이 아파서 서투르지만 죽을 끓였던 부엌, 실연을 겪고 무수한 생각으로 가득차 바라보았던 방의 창문까지, 이런 정서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곳이야말로 홈스윗홈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그것이 근사한 집이 될 수도있고 또 자동차가 될 수도 있습니다.
Searchlight Pictures.
아직 월세에 살고있는 저에게 만약 이런 유목민과 같은 생활을 하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2019년에만 이사를 3번을 했고, 지금의 월세집에서는 2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지금은 꽤나 잘 정착을 했다고 아내와 서로를 다독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집을 사려고 보니, 장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월세는 돈이 쌓이지 않고, 모기지를 하면 25년간 노동을 쉬지 않아야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공간을 정서적인 교감으로 물들이는 것도 저의 몫이겠죠. 그런 저에게는 유목민 생활을 할 용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에대한 저의 시선은 연민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낭만을 쫓는 사람들보단, 사회보장제도와 자본주의의 사각지대에서 놓인 소외된 사람들이 더 보입니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 여행 자체가 삶이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여행이 아니게 되겠죠. 유목민의 삶을 엿보고, 우리에게 집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끔 하는 노매드랜드(2020), 여러분도 보시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