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에서 살고있는 내가 우리나라에서 설을 보낸건 아마 군대에서의 합동차례가 마지막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군대에서 빨간날에 아침부터 목욕재계 하고 절을 해야 하는게 솔직히 달갑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설날 특식으로 떡이나 탄산 음료 같은 것이 배급되거나 해서 소소한 행복도 있었던것 같다. 참고로 이곳 일본의 설은 오쇼가츠라고 해서 양력 1월 1일을 의미한다. 기회가 되면 일본의 풍습 같은 것도 제대로 설명해 보고 싶긴 한데 오늘은 일단 할애하겠다. 설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은 오세치 요리 라고 해서 일본 전통 반찬의 모듬 같은 것도 있고 카가미 모찌라고 하는 동그란 찹쌀떡도 있다. 하지만 내가 굳이 이곳의 문화를 따를 의무는 없거니와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도 아니기에 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맛난걸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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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무엇을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일단 우리나라 명절 음식중엔 튀김이 자주 등장한다. 기름을 많이 쓰고 번거로워서 평소에 자주 만들어 먹기엔 부담스러운 음식이지만 모처럼 친족들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할 기회이기도 하기에 나름 수고를 들여서 만드는데 아닐까. 그런 의미로 일단 첫번째 키워드는 [튀김]이다. 그리고 설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니 뭔가 초심으로 돌아갈수 있거나 음식 자체가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을 먹으려 한다. 그렇다 두번째 키워드는 [초심]이다. 그리하여 내가 정한 음식이 [생산자조합 겐스이톤]이라는 곳에서 먹은 돈까스다. 절대 먹고 나서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게 아니다 믿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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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특이한 이름이다. 왜 [생산자조합]인가? 그 이유는 아까 키워드로서 제시했던 [초심]과 연결되는데 단순히 완성된 돈까스를 파는 가게가 아니라, 돈까스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들 그렇지 않냐?’라는 반론이 있을수도 있겠다. 그들에 의하면 지금의 돈육시장에 있어 항생제나 호르몬 촉진제, 농약등의 약품이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런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소비자가 느끼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한다. 그래서 소로 치면 [ㅇㅇ의 와규]처럼 결과적으로는 유명하지만 과정이 보이지 않는 고기가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실현하여 그것을 솔직하게 제공하는 것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돈까스에 사용하는 돼지를 사육할 때 전통적인 [평범함]에 포커스하여 생산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그렇게 초심으로 회귀하는 생산자들의 뚝심이 오히려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이들이 취급하는 돼지고기 및 다른 소재들은 이러한 초심을 지키고 있는 생산자들과의 거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들의 말로 정리하자면
1.
싱글 오리진 한정 취급(단일 농장/단일 생산자)
2.
풍미를 북돋는 저당질 빵가루
3.
농약미사용 - 환경 재생 농업으로 생산되는 채소
4.
효소 - 섬유질이 풍부한 식단
와 같은 대표적인 특징이 있다고 한다.
[4]
메뉴는 꽤 심플하다. [보통의 돈까스 정식]이라는 메뉴에서 원하는 돼지고기의 부위를 한가지~세가지까지 선택 할 수 있다. 고급 등심, 고급 삼겹살, 뒷다리살이 고정 메뉴이고 500엔을 추가하면 그때 들어온 희소 부위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약간 사고가 발생했는데 내가 처음에 주문한 메뉴는 2가지 메뉴(삼겹살 + 뒷다리살)이었는데 주문이 잘 못 들어가 뒷다리살이 아닌 등심과 삼겹살이 온 것이다. 다른 분 메뉴랑 착각하게 아니면 그냥 먹겠다고 했는데 죄송하니 다시 만들어 오겠다고 했다. 삼겹살의 돈까스를 먼저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 도착한 건, 사과의 의미를 담아서 주문한 뒷다리살보다 희소한 부위인 신신(아마 한국으로 치면 홍두깨살)의 돈까스였다. 자칫하면 고객의 체험이 저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기대를 넘어서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체험의 질이 높아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돈까스를 맛도 물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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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급 삼겹살은 기름진 부분은 있지만 지나치지 않아 적당한 감칠맛이 있고 비교적 무겁지 않은 저당질의 빵가루를 사용함으로써 밸런스가 잡힌 맛이었다. 점원이 직접 설명해 준 대로 소스 보다는 소금이 찍어먹는 것이 고소한 맛이 더 부각되어 좋았다. 그리고 희소 부위인 신신은 역시 희소 부위로서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맛이었다. 뒷다리살에서 업그레이드 했다는 건 그만큼 지방질이 적고 고기 본연의 육즙을 느낄 수 있는 탄력이 있는 부위인데, 사진에서 알 수 있듯 한 입 물으면 핑크빛의 육질에서 고급진 단 맛이 쏟아나왔다. 아마 튀김의 두께도 본연의 맛을 저해하지 않도록 부위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추천해준 소스인 와사비 간장과의 궁합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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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갈 거냐? 라고 물어본다면 0초만에 당연하지! 라고 말 할 수 있는 맛집이었다. 현재 거주중인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큰 계열사의 체인점도 아니기에 아직 인식이 퍼지지 않았는지 웨이팅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었는데 아마 앞으로 1시간~2시간은 당연히 줄 서서 먹는 맛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오픈 한 지 2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위와 같은 이유로 입소문은 이제부터 겠지만 돈까스의 본고장에서 먹어 본 수많은 리스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맛이었음은 분명하다. 아 가성비도 다른 유명한 가게 들의 2/3 정도이기에 꽤 괜찮다. 추천 씨게 박으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