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타이타닉(1997)이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과 같이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들이 먼저 생각나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을 받은 감독들의 영화들이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반면, 너무 좋은 영화여서 상을 받을만 했는데, 받지 못 한 영화들도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2019)의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수상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오늘 말씀드릴 영화는 아마도 기생충이 없었다면, 기생충이 받았던 감독상과 작품상 부문에서 수상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가 느낀 1917(2019)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Universal Pictures.
기술적인 측면을 빼놓고는 이 영화를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만든 이 영화는 마치 영화 전체가 편집점없이 만들어진 것 처럼 보이는데요. 단순히 이런 어려운 기술을 영화 전체에 구현해냈다는 이유만을 내세웠다면, 이 영화는 서커스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샘 멘데스 감독이 대단한 부분은 메세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기술을 뒷받침시킨 점인데요. 두 병사가 길을 나서서 목적지에 도달해야하는 시간과 공간의 다채로운 변화에서 오는 긴박감을 보여주기위해서 이런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촬영을 했다는 점입니다. 오후에 출발한 병사들이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2시간이 지나 저녁이면 목적지에 도착을 하게만들 수도 있었죠.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희망을 표현하기위해 새벽에서 아침으로의 시간대를 보여주기로 결정한 감독은, 과감하게 중간에 암전을 넣음으로써 의도적인 편집점을 만들어버립니다. 기술과시가 아닌, 이야기를 뒷받침하기위한 연출이 이 영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Universal Pictures.
영화의 이야기적인 측면도 뛰어난데요. 이 영화는 콜린퍼스, 마크 스트롱,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조연들의 캐스팅이 화려합니다. 반면 두 주인공들은 앞서 이야기한 배우들과 비교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맡았죠. 사실 이것은 영화의 주제와 맞물려있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만든 이 영화의 주제는 ‘익명의 평범한 병사의 위대함’입니다. 영화에서 유명한 배우들이 중요한 위치에 있고, 이들이 마치 전쟁을 진두 지휘하고 전세를 바꾸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우리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무명의 병사들이 있었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가 바로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Universal Pictures.
두 병사의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기때문에 영화에서는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수직과 수평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차지하는데요. 영화 시작에서부터 병사들을 카메라가 수직으로 따라오는데, 이들을 가로막는 수평의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병사들무리가 이들 앞을 지나가서 멈추기도하고, 다리가 무너지고, 나무가 가로막혀있기도 하죠. 그러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라고 할수있는 스코필드의 달리기 장면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막아서고, 그들에 부딪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끝끝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음에도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집에 갈 마음을 잃었던 병사가 희망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을 관객들이 느끼기때문이죠.
Universal Pictures.
그리고 엔딩부분이 감동적인 이유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영화는 시작서부터 스코필드는 본인이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 놓여져서 생존을 강요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블레이크는 형을 구해야하고 또 독도법에 능했기때문에 이유라도 있었지만,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필드는 이 임무를 수행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었죠. 그가 임무에 뽑힌 것은 블레이크의 옆에 있었다는 이유뿐입니다. 그리고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geworfenheit)이고, 장애물들은 하나같이 왜 하필 내 앞에 있나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스코필드는 지도에 능하지 않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는 길을 그저 묵묵히 따라갑니다. 하지만, 마지막엔 그쪽으로는 갈 수 없다는 말을 듣지만, 본인이 선택(netwurf)한 길을 달리며 결국 임무를 완성합니다.
비록 기생충에 밀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빛을 못 봤을지언정, 이 영화는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클래식으로 회자될 영화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영화제 시즌만되면 생각나는 영화, 1917(2019)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