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아름답습니다. 가설이 있으면 그걸 증명하고, 이야기가 있으면 그것을 고스란히 전달해주죠.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잘 쓰여진 논문을 읽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막바지로 다다르는 시점에서 오늘은 가설을 증명하려다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게된 다큐멘터리 한 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합니다.
Netflix.
2018년 제 90회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를 수상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이카루스(2017)의 시작은 감독인 브라이언 포겔의 슈퍼 사이즈 미(2004)유형의 감독 본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습니다. 고환암을 이겨내고 재활을 거쳐 투르 드 프랑스에서 무려 7번이나 우승을 한, 한 때의 인간승리의 아이콘이자 감독의 우상이었던 랜스 암스트롱이 어떻게 도핑 테스트를 벗어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도핑이 직접적으로 경기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죠. 여기서 다큐멘터리의 첫번째 이카루스 레퍼런스가 나옵니다. 랜스 암스트롱이 자신있게 약물을 사용한 적이 없다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태양이 나오죠. 인간승리의 아이콘이 도핑이란 태양에 밀랍 날개가 녹아버려 추락했음을 보여줍니다.
Netflix.
브라이언 포겔 감독은 연습만으로 사이클 경기에 참가해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이제 도핑을 하기위해 자문을 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반도핑 실험실 소장으로 지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를 알게되죠. 로드첸코프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도핑+훈련으로 마치 무난하게 10위권 안에 들어갈 것만 같았던 포켈 감독은 경기 당일에 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도핑을 하기 전 보다 오히려 떨어진 성적을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망감을 느낄 새도 없이, 세계 반도핑 기구(World Anti-Doping Agency, WADA)에서 러시아 육상 선수단이 단체로 도핑을 해왔음을 발표하고 그 중심에는 로드첸코프가 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결함을 증명하려던 다큐멘터리는 정치 범죄 스릴러로 바뀝니다.
Grigory Rodchenkov. Emily Berl for The New York Times
마치 다이달로스가 크레타 섬에서 이카로스를 탈출시킨 것처럼, 포겔 감독은 러시아에서 로드첸코프의 탈출을 돕습니다. 미국으로 무사히 탈출한 로드첸코프가 수많은 자료와 함께 꺼낸 말은,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 전 종목의 선수들에게 도핑을 지시했고 대외적으로 이 사실을 은폐했다. 갑자기 그의 동료가 러시아에서 돌연사 하고, 미국 연방 수행원들이 그의 신변을 위협하는 등 어느 쪽도 믿을 수 없었던 로드첸코프는 뉴욕 타임즈에 모든 내용을 폭로하며 세간의 이목을 본인에게 집중시키며 본인을 지켰습니다. 이 결과, 러시아는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러시아라는 팀으로 출전이 금지됐죠.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어떤 국제대회에서도 러시아 국기를 볼 수 없습니다.
단순히 러시아 국기를 못쓰고 국가를 연주 못 한다고 합당한 처벌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하는 동안 베이징 동계 올림픽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러시아 피겨 선수인 카밀라 발리예바의 도핑에 적발되었다. 선수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예외를 받고 얼마나 본인의 의지로 도핑을 했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도핑을 했다면 다시는 경기에 출전을 시키지 않아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각본없는 스포츠에 사실은 각본이 있었고, 우리가 느꼈던 감동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회의감이 지속된다면, 전세계인의 화합의 장인 올림픽은 그저 무의미한 그들만의 축제가 될 뿐입니다. WADA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IOC는 여전히 러시아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락했고, 그것도 내년 부터는 다시 러시아 국기가 걸릴것입니다.
반도핑 기구에서 도핑을 도모했던 로드첸코프는 현재 미국 정부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들의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푸틴의 지지율은 올랐고, 로드첸코프는 탄탄한 지지율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죠. 많은 나라들이 베이징 올림픽을 정치적 보이콧하는 가운데, 푸틴이 베이징으로 가 시진핑을 만난데에는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일어나는 일과 무관하다고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 전쟁이 평화이고, 자유는 노예이며, 무지는 힘이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민이 아닙니다. 전쟁이 평화가 아님을 알고, 노예는 자유가 없으며, 아는 것이 힘인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우민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같이 더 크게 목소리를 내어 예외없이 적용되는 더욱 강력한 제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