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지 않아도 맛있는 담배를 알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분위기가 원작 애니메이션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 버전은 그 분위기를 담지 못 하고, 그저 특이한 캐릭터들의 SF활극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넷플릭스 카우보이 비밥에서 아쉬운 점 몇가지를 이야기해보려고합니다.
Netflix.
원작은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란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며, 어른이 되서야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을 담아냈습니다. 주인공 스파이크가 어떤 과거가 있는지 보는 이들이 몰라도, 그가 내뿜는 담배 연기에 삶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연출이 이 애니메이션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았죠. 마치 사막에서 목적지 없이 떠돌아 다니는 카우보이들같이, 우주(삶)에서 정처없이 유영하는 인물들을 보며 그 삭막함을 함께 곱씹는 것이 넷플릭스 버전에는 빠져있습니다. 원작이 영화적 연출이 많았기에 오히려 실사화를 시키며 만화적인 연출을 시도한 것은 좋았지만, 작품의 또 다른 핵심 캐릭터와 같았던 분위기가 빠져버렸죠. 홍상수 감독은 본인의 영화를 노출과 폭력이 없음에도 영상 등급위원회에 처음부터 청소년관람불가로 신청을 합니다. 이는 감독이 본인의 영화는 성인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기에 성인용이라고 설명을 하는데요. 넷플릭스의 카우보이 비밥은 이 성인용 컨텐츠라는 해석을 노출과 폭력으로만 풀어낸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런 연출 미스는 음악을 어떻게 다루는지에도 계속됩니다. 음악을 빼놓고는 카우보이 비밥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칸노 요코의 OST가 쿨~하고 펀~해서 섹시하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연출이 있었기에 지금의 인기가 가능한 것인데요. 넷플릭스의 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음악이 영상과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있지 않습니다. OST가 뒤에 깔리는 배경음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버렸습니다. 카우보이 비밥의 리마스터링 dvd의 북클릿에 수록된 인터뷰에 따르면, ‘음악이 단순히 영상을 설명하는 것 그 이상의 기능을 하기를 바랐다.’ ‘…음악이 가진 파워를 최대로 끌어내서 씬이 음악을 어떻게 고조시킬지를 생각했어요.’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컷씬에 맞춰서 음악이 끝날때의 쾌감은 없어짐은 물론이고, 각 에피소드의 제목에 들어간 다양한 음악의 장르에 따라 때로는 추리물, 스릴러, 형사물로 다양한 장르적의 매력 또한, 넷플릭스 버전에는 없습니다.
Netflix.
배우들의 노력에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배우들이 얼마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비슷한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이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더 관건이죠. 페이가 갑자기 레즈비언이 된 것이 본인의 과거를 찾는 과도기,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이해 가능한 행동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문제는 줄리아의 이야기가 너무 풍부해진 나머지 최종보스가 되버린 상황에서 생기는 전체 이야기의 붕괴입니다. 원작에서 줄리아는 죽었기에 가능했던 감정들이 있었습니다. 스파이크는 현재에 존재할 뿐 삶을 살지 않았고, 그 큰 이유는 줄리아로 대변되는 과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넷플릭스의 줄리아는 반전을 위해 흑화된 최종보스로 남아버립니다.
Sunrise.
스타워즈 만달로리안(2019)을 보며, 카우보이 비밥을 이렇게 실사화하면 정말 멋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헬멧을 쓰고있어서 표정을 알 수없는 캐릭터의 고독한 감정이 미니멀한 음악과 연출을 통해서 그대로 느껴졌기에, 아기를 지키기위한 캐릭터의 고군분투가 더 공감이 가는 것이었죠.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지키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스파이크가 현재를 바라보는 오른쪽 눈으로 허공에 총을 쏘며 긴 투쟁을 마무리 짓는 그 감정을 실사에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원작 애니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 중 한명으로, 다음 카우보이 비밥은 팝콘과 콜라 보다는 위스키와 담배가 더 어울리는 프로젝트였으면 좋겠습니다. See You Space Cow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