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이 테넷 이후 3년만에 그의 첫 전기영화로 돌아왔습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업적, 그가 겪었을 죄책감, 그리고 맥카시즘의 희생양까지 담고있는데요.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저의 경험과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Universal Pictures.
먼저 7개월만의 극장나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아바타:물의 길(2022)이었는데요. 크리스토퍼 놀란이 연출한 영화는 다크 나이트(2008)부터 계속 극장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극장 관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잘 이해해주는 자애로운 아내의 허락하에, 캐나다에서 6곳에서만 상영하는 아이맥스 70mm 필름으로 영화를 보고왔습니다. 아니 영화로 샤워를 하고 왔습니다. 아이맥스가 뿜어내는 문자 그대로의 몸이 떨릴만한 굉음과, 마치 관객을 덮칠듯한 거대한 스크린에 압도되어 3시간을 보냈는데요. 놀란 감독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최대한 큰 스크린, 큰 사운드로 영화를 체험하기실 바랍니다.
Universal Pictures.
이 영화의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오펜하이머 평전의 제목처럼, 오펜하이머의 업적과 개인사의 명암을 다루고 있습니다.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연출이 재밌는데요. 흑백은 스트라우스의 관점에서, 컬러는 오펜하이머의 관점에서 영화를 진행하고있습니다. 메멘토에서 단순히 다른 시간을 표현하기위해 흑백과 컬러의 차이를 둔 것과는 달리, 관점에 따라 화면의 색감을 달리함으로 크리스토퍼 놀란다운 편집을 보여주는데요. 크리스토퍼 놀란답게, 전기영화임에도 시간순서대로 영화가 진행되지 않습니다만 영화 곳곳에 영리하게 클라이맥스가 배치되어 있고, 영화적 쾌감을 선사하며 3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Universal Pictures.
이 영화는 원자폭탄의 개발과정과 그 성공을 보여주는 블록버스터가 아닙니다. 만약 일반 블록버스터를 연출하는 감독이 비슷한 주제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개발과정의 어려움 이후 성공에서 오는 쾌감을 보여주기위한 연출을 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이클 베이 스타일의 애국심+폭발효과를 버무려 폭탄자체가 더 부각된 그런 영화가 됐겠죠. 하지만 놀란은 폭발 장면을 굉장히 건조하게, 그 위력을 실감하게 연출해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연출을 함으로써 개발 성공의 기쁨과 죄책감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었죠. 이런 전달이 가능했던 것은 배우들의 열연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Universal Pictures.
이 사람도 나와? 라고 생각되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펼쳐지는데요. 킬리언 머피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단언컨데 아카데미 주연, 조연 최종 후보에 오를만한 연기들을 보여줍니다. 마블 시리즈에 가려서 로다주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채플린(1992)과 키스 키스 뱅뱅(2005)때를 떠오르게 만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극을 이끌어 가는 주연으로서의 킬리언 머피는 복잡한 인물을 잘 연기해냅니다. 인물의 다양한 면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려면 배우가 관객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연기가 중요한데 이를 잘 해내고있습니다. 특히 아이맥스 카메라가 킬리언 머피를 클로즈업한 순간마다 인물이 겪는 고뇌가 깊게 패인 눈으로 다 전달이 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밖에도, 이 포스팅에 다 담지 못 할만큼의 유명/대단한 배우들이 곳곳에서 열연을 펼치는데요. 저는 크레딧이 올라갈때, 저 사람도 나왔어?!라고 할만큼 미쳐 발견하지 못 한 배우들도 있었어서, 배우를 찾는 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Universal Pictures.
왜 크리스토퍼 놀란은 21세기에 그것도 논란의 인물에 대한 전기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일까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고 처벌받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오펜하이머는 나치척결에서 전쟁 종결이라는 대의를 위해 원자폭탄을 세상에 가져다 주고 그 결과를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처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정부에 규제를 요청해도 1950년대의 맥카시즘에 의해 그리고 그를 적대한 인물들에 의해 그가 폭탄을 만들었을 때의 대의조차 의심받게 되죠. 혼란스러운 인물의 감정과 시대를 따라가다보면, 그 시대를 반면교사로 삼아 21세기의 우리는 달라야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 더 강하고 더 빠르게 다가오는 만큼,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정부의 규제가 동반되어야한다는 것이죠.
Mark Sommerfeld for The New York Times.
북미에서는 ‘바벤하이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같은날 개봉한 바비(2023)와 함께 엮어서 여러가지 밈을 만들어내며 두 영화는 이번 여름 관객들에게 여러방면으로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 영화를 하루에 연달아 보는 더블 피쳐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하며 개봉 첫주 두 영화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요. 오랜 둥지와도 같은 워너 브로스를 떠나 유니버설과 처음으로 작업한 크리스토퍼 놀란과 워너 브로스에서 내놓은 바비가 함께 엮이는 것을 보고있는 것도 재밌는 광경이라고 생각합니다.
Unofficial satirical poster designed by English graphic artist Sean Longmore, commissioned by Layered Butter magazine.
최대한 넓은 스크린,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감상하길 바라며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이 직접 읽어주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같은 느낌의 영화, 오펜하이머(2023)였습니다.
7.
25.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