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산타 모니카.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 L.A.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우리에게 믹스 테잎을 팔던 흑인들이 우리에게 한 번 더 팔려고 하길래 우리 이미 샀다고 이야기하며 그냥 지나쳤다. 그 믹스 테잎을 B에게 주고 오려고 했는데, 까먹고 말았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잊지말고 전해줘야겠다. 꼭.
이번에는 산타 모니카 Big Blue Bus와는 노선이 다른 메트로 라인인데, 역시나 $1.75로 저렴한 교통비였다. 2시간 이내에 같은 회사의 교통수단으로는 무료로 환승도 가능해서 최단 루트를 알아보고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로 향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우린 정말 아무 생각없이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유모차에, 백팩에 누가봐도 관광객인 우리의 행색이 문득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오버의 체력적인 피곤함과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 겪은 심리적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아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도 눈만 감으면 그대로 다 놓아버리고 잠들것만 같았다. 그순간 나는 맞은편의 노숙자 한 명과 눈이 마주치고는 정신이 바짝들고, 아내와 아이를 지켜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 잠을 깨우고 있었다. 버스로 환승을 무사히 했는데, 몸이 불편한 노숙자가 유모차를 가지고 낑낑대며 버스를 타는 우리를 보고는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리고 비가 추적 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발견한 N.W.A. 마음 속으로 조용히 Fxxk the police를 흥얼거렸다.
창 밖을 보니 점점 하늘은 어두워져 가고, 차들은 하염없이 막히고, 우리의 마음은 초조해져만 갔다. 그렇게 산타 모니카 해변을 떠난지 약 2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헐리우드 거리 시작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비가 점점 더 거세지더니, 실내로만 움직여야할 정도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타켓에 잠깐 들러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5시가 되었다. 바삐 움직여 돌비 극장으로 걸어갔다.
비오는 와중에 라인 프렌즈가 보여서 Thumb up
오스카 준비로 한창인 거리였지만, 날씨때문인지 활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헀다. 나는 여러가지의 이유로 영화를 좋아한다. 5살때 쥬라기 공원(1993)을 극장에서 본 이후로 그냥 영화가, 영화관이 좋았다. 영화를 보고 시네필을 티내기도 좋아했고 그런 나의 연중행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챙겨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제 TV속에서나 보던 그 장소에 곧 도착할 터인데 나의 흥분도는 나의 기대한 만큼을 따라오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를 피해 빠르게 걷다보니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곧 레드카펫이 깔리게 될 아카데미의 현장에 도착했는데,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시원하게 비워내고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많은 영화제작자, 배우들이 2주 뒤에 나와 같은 장소에서 오줌을 눌거란 생각에 내심 뿌듯했다. ‘헐리우드 인사들과 같은 곳에서 배설을 하다니 나도 출세했군’ 이란 생각을 하며 극장 안을 돌아다녔다.
코닥에서 돌비로 바뀐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저 영화들 사이의 기생충(2019). 빛이 난다.
96편의 작품상 수상작들에 둘러싸여, 내가 보았던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들을 잠깐 회상해보았다. 학교에서 볼때도 있었고, 방학이었을 때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OCN을 찾던 나를 떠올릴 때쯤, 시계를 보니 6시가 다 되어갔고, 밖엔 아직도 많은 비가 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피스 천문대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유모차를 끌며 아이를 데리고 비까지 맞으며 천문대까지 올라가는 것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여행을 계속하려는 의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돌비 극장 앞의 지미 키멜 라이브. 지미 팰런보다는 난 이쪽 지미를 선호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국 배우들의 핸드 프린팅을 찾아보기로 했다. TCL 차이니즈 극장 입구를 보고 왼쪽 구석에서 우리나라 배우들의 핸드 프린팅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린 L.A. 공항으로 돌아왔다.
날씨가 안 좋아서였을까, 삭막한 도시의 풍경 때문이었을까. 아님 우리가 그냥 지쳐있었을까. 딸아이와 처음으로 함께한 L.A. 레이오버는 뭔가 첫 단추부터 맞지 않고 끝까지 씁쓸한 뒷맛만을 남겼다. 다음에 우리가 다시 이 도시를 방문할 일이 있을까라는 물음표만 남긴채 우리의 여행을 끝이 났다. 나는 내가 꿈꿨던 꿈의 공장 La La Land가 무허가 폐공장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기에, 만약 L.A.가 너무 좋았다싶은 사람은 제발 나에게 연락을 주길 바란다.
4.
3.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