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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평소에 커피를 즐겨 마시는 편인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시사철 달고 사는 직장인일수도 있고 카페인이 맞지 않거나 특유의 향미를 싫어해서 입도 대지 않는 기피자일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커피 애호가이자 업으로 관계하고 있으며 매일 2잔 이상은 커피를 마시는 지독한 놈이다. 왜 이 커피란 음료는 내 하루하루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게 되었고 어떻게 삶 속에 녹아나고 있을까?
모모스 커피 온천장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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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까지는 커피의 쓴 맛과 카페라는 공간이 좋았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많은 분들이 이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커피의 맛은 다 거기서 거기 같았지만 다른 음료에서 느낄 수 없는 이 검은 물의 오묘한 쓴 맛과 탄 맛이 그냥 좋았고, 식사 혹은 디저트와 함께 사람들이 커피를 홀짝 거리는 카페라는 공간이 좋았다.
커피를 더 알고 싶다라는 욕심은 없었다. 오히려 더 다양한 카페를 가보고 싶어했지만 거기서 블랙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았고, 라떼나 시그니쳐 드링크가 맛있다던지 디저트가 맛있거나 인테리어가 멋지다던지 다른 요소에 끌려서 카페 투어를 취미로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만나버렸다. 글리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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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다. 신 맛이 나는게 좋은 커피라며 그동안 많은 분들이 추천해준 커피는 내게 맛있는 커피가 아니었고, 커피 자체를 더 알아가고 싶다라는 마음은 1도 없었을때 글리치에서 기가 막힌 커피와 만나버렸던 것이다.
그 때 부터 미친듯이 커피를 찾아다녔고 지금도 커피 헌팅은 계속되고 있다. 프렌치프레스 같은 기구나 드리퍼를 이용해서 집에서 원두로 내려먹기도 하고 카페도 찾아다닌다.
어디서 마시는 커피가 더 좋고 어떻게 마시는게 더 좋은지 콕 찝어 말해줄 수는 없다. 군대에서 신병훈련 도중 마시는 탄산음료가 밖에서 마시는 한 잔과 몇 십 몇 백배의 맛의 차이를 가지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랑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첫 식사를 천상의 맛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거니와 긴장한 나머지 맛을 신경쓸 거를이 없어 음미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처럼. 그것도 커피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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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빨리 일어나서 수동 그라인더로 분쇄한 커피향을 맡으며 내리는 드립 커피도 그렇고 재택 근무를 할 때 미팅과 미팅 사이에 빠르게 내려 마시는 2잔째 커피도, 미리 만들어놓고 멍 때리며 마시는 콜드브루도 나에게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게 해준다.
특별한 커피를 찾을 이유가 없었던 예전에 비해 한 모금 씩 음미하며 커피와 마주하는 시간은 단순히 5~10분간의 휴식 이상으로 의미를 지닌다. 실은 카페인 내성이 너무 뛰어난 나에게 커피는 각성효과를 기대하며 마시는 음료는 아니다. 그렇기에 더 오감을 발휘하여 진행하는 하나의 세레모니 같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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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나는 2000원 전후의 가성비 좋은(?) 카페인 음료는 더 이상 커피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태운 맛, 쓴 맛]에 대한 역치가 높아졌다라기 보다는 커피에서 그런 맛들을 기대하고 즐길수 있었던 그 때와는 생각 자체가 바뀐 것이 큰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러했듯 이러한 맛을 기대하고 드시는 분들은 그대로 즐겨주시면 된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기대가 다른 것일 뿐. 내가 명품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명품을 만들거나 구매하는 분들을 부정하는 것은 편협한 사고다. 가치관이 달라도 공존할 수 있듯이 겸손한 매니아가 되어 강요하지 않으며 살아가려 하는 것이다.
아 하지만 x심 커피믹스는 진리다. 맛있어. 짜릿해.
마셔보고싶은 원두가 없을 때는 거의 라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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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렇게 되리라고는 정말 예상도 못했는데, 원래부터 커피를 즐겨 마시던 [G]와 나 외에 fudio의 나머지 세명의 멤버 모두가 태운 맛, 쓴 맛만 나는 커피가 아닌 플루티하거나 스파이시한 향미를 지닌 커피를 집에서 내려먹게 되었다.
나 자신도 꽤 먼 길을 오랫동안 둘러왔기에 비교적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커피에 대한 공감대가 늘어가는게 기쁘다. 커피를 서로 추천하고 선물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고 닮은건 1도 없는 놈들이 공감해 준다는게 같이 나이들어 간다는 증거인거 같기도해서 뭔가 센치해진다.
그냥 커피가 좋다는 말이다. 내 삶이 하루하루 윤택하다는 말이다.
23.06.28 - 커피와 일상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