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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최근에 다시 본 5개의 시퀀스

2살 아이를 가진 아빠의 유일한 자유시간은 아이가 잠들고 아내도 잠이 든 새벽 혹은 이른 아침 밖에 없습니다. 그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해야하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우겨넣다보니 스스로를 위한 제대로된 인풋도 아웃풋도 내지 못 하는 상황이 되죠. 아내 몰래 연장해 놓은 게임패스로 15분 게임을 하고, 최근에 올라온 아가사 올 어롱을 다시 15분을 보고, 유튜브에서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보면 다시 또 15분이 훌쩍 지나가있습니다. 그러다 ‘내일을 위해서 자야지’하며 계단 쪽을 바라보면, 그 옆에 먼지가 쌓여가는 블루레이 장에 시선이 머물고 먼지를 털며 ‘한 시퀀스만 보고 잘까’라는 마음으로 최근에 손이 가는대로 돌려본 5개의 시퀀스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라라랜드 오프닝
고전 뮤지컬 영화를 오마주하는 로고에서부터 시네마 스코프의 웅장한 화면 비율로 보여주는 LA의 꽉막힌 고속도로에서 원테이크로 보여주는 안무와 신나는 음악은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조금이나마 화이팅을 불어 넣어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딸아이가 본인의 취향이 점점 더 확고해져가서 차에 태우고 음악을 틀어주면 이제는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NO라고 말을 하는데요. 이 노래는 처음 들을 때, 가만히 듣고 있더니 고개를 까딱거리며 신나게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오펜하이머 속 키티 오펜하이머의 증언
키티 오펜하이머가 과연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감싸줄 것인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가 확실하지 않은 순간, 초조해하는 듯한 키티로 시작된 질의응답은 키티가 답변을 시작하는 그 순간 상황이 반전되는 희열은 영화 속 핵폭발 실험 장면보다도 더 통쾌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펜하이머에 나온 모든 캐스트가 상향 평준화된 연기를 보여주는데 에밀리 블런트도 예외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호흡을 멈추고 바라보게 만드는 흡입력있는 연기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더 배트맨 속 카체이싱 장면
영화관에서 보며 와 진짜 개쩐따 미쳤다 라고 수없이 이야기하다가 이 장면이 시작하고나서 숨죽이며 턱은 열린채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의 위험한 카 체이스를 보고있으면 마치 내가 사고가 날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차들의 속도를 온전히 느끼다 카 체이싱이 멈춘 이후 배트맨을 뒤집어 마치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있는 것처럼 연출한 장면은 이 영화를 소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장센이 워낙에 좋은 영화지만, 오프닝의 지하철 전투와 마지막 전투, 그리고 이 카 체이싱 장면은 정말 멋있게 만든 장면들입니다.
인디애나 존스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 오프닝
핵폭발 속 냉장고로 들어가면 산다는 영화적 설정과 엔딩의 외계인으로 까일대로 까이고 있지만, 누가 뭐라고해도 저의 히어로 원탑인 인디애나 존스를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영화의 시작부터 중반부까지는 깔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죠. 최근에 본 5편이 너무 실망이었기에, 저에게 인디의 실질적 엔딩은 이 영화라고 생각하는데요. 신비한 보물 사냥, 매력넘치는 악당과 액션 활극. 무엇하나 빠지지않는 이 오프닝은 한 번 틀어놓으면 그저 미소를 짓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던 때로 저를 데려갑니다. 벌써 16년 전이네요.
날씨의 아이 속 그랜드 이스케이프 장면
마지막은 날씨의 아이의 클라이맥스 부분인 대탈주 장면입니다. 이 부분은 대사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못 찾았는데요. 신카이 마코토의 ‘세카이계’에서 남자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세계의 존망 사이에서 여자 주인공을 선택하는 장면은 저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세카이계’가 잃어버린 10년(20년..30년…)의 절망적인 사회 분위기 속 예정된 파멸을 향해 걸어나가는 소년 소녀들의 관계를 표현하듯, 이 장면에서의 주인공이 모든걸 걸어서라도 꼭 구하고 싶어라는 중2병스런, 세상이 멸망해도 너만은 살아줬음 좋겠다는 그런 낭만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최근에 돌려본 시퀀스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조금 더 자주 제가 내고싶은, 나 다운 아웃풋을 내기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위의 장면들을 함께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4 09.25